||<-2><table align=center><table width=600><table bordercolor=#00001b><bgcolor=#ffffff> || ||<bgcolor=#00001b> '''{{{#white 이름}}}''' ||<bgcolor=#ffffff> 김인섭(Kim Insub) || ||<bgcolor=#00001b> '''{{{#white 국적}}}''' ||<bgcolor=#ffffff>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 ||<bgcolor=#00001b> '''{{{#white 출생}}}''' ||<bgcolor=#ffffff> [[1973년]] [[3월 2일]], [[대구광역시]] || ||<bgcolor=#00001b> '''{{{#white 학력}}}''' ||<bgcolor=#ffffff> 계성초등학교[br]계성중학교[br]경북체육고등학교 || ||<bgcolor=#00001b> '''{{{#white 종목}}}''' ||<bgcolor=#ffffff> [[레슬링]] || ||<bgcolor=#00001b> '''{{{#white 체급}}}''' ||<bgcolor=#ffffff> 그레코로만형 58kg || ||<bgcolor=#00001b> '''{{{#white 신체}}}''' ||<bgcolor=#ffffff> 168cm, 67kg || ||<bgcolor=#00001b> '''{{{#white 소속}}}''' ||<bgcolor=#ffffff> 삼성생명 레슬링단 || [목차] == 소개 == [[대한민국]]의 前 [[레슬링]] 선수로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그레코로만형 -58kg에서 우승하며 주가를 높혔다. 그리고 이듬해 열린 1999 세계선수권마저 정상에 오르면서 단숨에 한국 레슬링의 기대주로 등극했다.[* 1998 세계선수권부터 2년 동안 45연승 무패행진을 달렸다.] == 선수 경력 == === [[2000 시드니 올림픽]] === 한국 선수단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손꼽혔지만 예선, 그것도 1회전에서 같은 체급 최고의 라이벌 유리 멜리첸코([[카자흐스탄]])을 만났다.[* [[월드컵]]에서 [[FIFA 랭킹]] 1~4위 팀이 같은 조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를 방지하고자 월드컵 조추첨에서는 톱시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올림픽 레슬링은 그딴 것 없다.][* 그리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유력한 금메달 후보 [[김현우(레슬링)|김현우]]가 예선 첫경기에서 동급 최고의 라이벌인 로만 블라소프(러시아)를 만나 판정논란 끝에 패하여 동메달에 그쳤다.] 빨라야 준결승에서나 만났을 법한 상대를 예선 1회전에서 만났으니 초반부터 있는 힘 없는 힘 다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이겼지만 상대가 어필하는 바람에 재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이 재경기에서 왼손 손가락이 2개나 꺾이는 부상을 당했다. 다음 날 치른 2회전 상대 역시 세계 정상급 기량의 딜쇼트 아리포프([[우즈베키스탄]])였다. 접전 끝에 이겼지만 상대가 어필하는 바람에 또 재경기를 치러야 했는데, 이 재경기에서 그레코로만형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늑골 부상[* 그레코로만형은 상체만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을 당했다. 경기 종료 직전 안아넘기기를 성공시켜 극적인 역전승으로 예선 통과를 했지만 이미 김인섭의 몸은 2번이나 재경기를 치르느라 녹초가 된 후였다. 다음 날 김인섭은 부상 부위에 진통 주사까지 맞아가는 불같은 정신력으로 8강과 4강의 벽을 넘었다. 결승전 상대는 [[불가리아]]의 강호 아르멘 나자리안.[*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아르메니아]] 태생이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아르메니아 국적으로 금메달을 딴 강호다.] 초반에 엉치걸이로 3점을 따낼 때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예선전 때 입은 손가락과 늑골 부상으로 방어 위주로 갈 수밖에 없었고, 주심은 이를 놓치지 않고 김인섭에게 패시브[* 일명 '빠떼루'로 불린다. 소극적으로 경기를 운영한 선수에게 선언하는 일종의 벌칙이다.]를 선언했다. 김인섭의 투혼은 거기까지였다. 나자리안은 김인섭의 늑골을 집중 공략했다. 아무리 진통제를 맞았다고 하지만 상대가 부상 부위를 집중적으로 건드리니 그 고통이 어떻겠는가? 나자리안은 단 한번의 패시브 찬스를 잘 살려 김인섭을 두 번 연속으로 들어메쳤다. 특히 두 번째로 들어매쳤을 땐 들어메친다기보다 아예 김인섭의 어깨를 매트에 메다 꽂았다. 이 과정에서 몸이 접히는 충격(게다가 늑골 부상중이었음을 생각해 보라)으로 더이상 방어할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고, 결국 폴패하여 은메달에 머무르고 말았다. 물론 김인섭의 연승행진도 시드니 올림픽 결승전에서 깨지고 말았다. 당시 인터뷰는 온 국민의 마음을 울렸다. > '''"모든 것을 다 바쳤거든요. 최선을 다 했습니다. 하늘이 저를 은메달밖에 안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2008 베이징 올림픽|8년 후]], [[유도|다른 종목]]에서 김인섭처럼 [[왕기춘|늑골 부상으로 결승전에서 힘 한번 못써보고 상대에게 큰 기술을 허용해 은메달에 그친 선수]]가 [[역사는 반복된다|대한민국에 또 나왔다.]] ===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 올림픽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한 체급을 올려 -66Kg에 출전해 금메달을 다시 차지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 [[2004 아테네 올림픽]] === 8강전에서 패배하면서 결국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참고로 시드니에서 김인섭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긴 장본인 나자리안은 [[2004 아테네 올림픽]] 준결승에서 대한민국의 [[정지현]]에게 패해 올림픽 3연패가 좌절되었다. 인터뷰에서 말하길 [[2000 시드니 올림픽]]과는 달리 이때는 간절함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올림픽을 한 달 가량 앞두고 아들을 얻었는데, 아들이 눈에 밟혀 마음이 많이 흐트러져서 그렇다고 밝혔다. == 은퇴 이후 == 올림픽 이후로 삼성생명 레슬링단 코치로 일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 수상 기록 == ||<-3><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131230><table width=350><bgcolor=#131230> {{{#white 올림픽}}} || ||<bgcolor=#c0c0c0> 은메달 ||<bgcolor=#ffffff> [[2000 시드니 올림픽|2000 시드니]] ||<bgcolor=#ffffff> 58kg || ||<-3><bgcolor=#131230> {{{#white 세계선수권}}} || ||<bgcolor=#ffd700> 금메달 ||<bgcolor=#ffffff> 1998 예블레 ||<bgcolor=#ffffff> 58kg || ||<bgcolor=#ffd700> 금메달 ||<bgcolor=#ffffff> 1999 아테네 ||<bgcolor=#ffffff> 58kg || ||<bgcolor=#c0c0c0> 은메달 ||<bgcolor=#ffffff> 2001 파트라스 ||<bgcolor=#ffffff> 63kg || ||<-3><bgcolor=#131230> {{{#white 아시안 게임}}} || ||<bgcolor=#ffd700> 금메달 ||<bgcolor=#ffffff> [[1998 방콕 아시안 게임|1998 방콕]] ||<bgcolor=#ffffff> 58kg || ||<bgcolor=#ffd700> 금메달 ||<bgcolor=#ffffff> [[2002 부산 아시안 게임|2002 부산]] ||<bgcolor=#ffffff> 66kg || == 기타 == * 동생 김정섭도 형과 함께 레슬링 선수로 활약했다. *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얻은 아들은 2020년 현재 고등학교 야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각주] [[분류:레슬링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3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병역특례자/레슬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