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후삼국시대/인물]] [include(틀:후삼국시대 호족들)] [목차] == 개요 == 金仁匡 [[후삼국시대]]에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일대를 차지했던 [[호족]] 세력.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 문헌기록에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으며, 오직 당시에 활동한 [[승려]]의 비문에만 등장한다. == 생애 == >지김해부 진례성제군사 명의장군(知金海府眞禮城諸軍事 明義將軍) 김인광(金仁匡)은 가정(鯉庭)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대궐에 정성을 다하였으며, 선문에 귀의하여 숭앙하고 삼보(三寶)의 집을 돕고 수리하였다. 대사는 마음에 가련히 □□하고 여생을 보낼 뜻을 가졌다. 현묘한 종지를 높이 강연하고 부처의 도를 널리 선양하였다. >---------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昌原 鳳林寺址 眞鏡大師塔碑) 비문([[924년]]) 김인광은 무력화한 후삼국시대 신라 조정에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충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장군직을 자칭한 점에서 진짜 신라의 [[충신]]이라기보단 흔한 후삼국시대의 야심가 호족 중 한 명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9주 5소경|5소경]] 중 하나인 김해처럼 신라에서 손에 꼽히는 대도시에, 위치도 신라 수도 [[서라벌]]과 가까운 지역 호족이 적어도 신라 조정을 적대하고 위협하지는 않았던 점에서 그나마 신라 조정에는 다행이었던 셈. 그의 출신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김해지역을 지배하는 김씨 호족이란 점에서, 가야계 [[김해 김씨]] 계통 재지호족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경주에서 지방관으로 파견된 신라계 [[경주 김씨]] 계통이 전국이 혼란스러워지자 호족으로 눌러앉은 케이스일 가능성도 있다. 진례성제군사란 호칭으로 지금의 김해시 [[진례면]]을 중심으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진례성제군사라는 호칭은 이후 [[소율희]]가 계승한다.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승려]]들을 후원했으며, 이에 [[고승]]들이 김해에 많이 정착하게 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말에 [[소충자]], [[소율희]] 형제가 김해를 공격하는데, 그 당시 성주가 김인광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소씨 형제도 김인광과 마찬가지로 불교 신자였기 때문에 김해는 계속 후삼국시대 승려들의 안식처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