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만주군/조선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제5대 민의원의원]][[분류:고성군(강원) 출신 인물]][[분류:1909년 출생]][[분류:1996년 사망]][[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군]] [[파일:external/rokps.or.kr/691.jpg|width=150]] 金應祚 1909년 10월 14일 ~ 1996년 9월 2일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호는 위정(慰亭)이다. 1909년 [[강원도]] [[고성군(강원도)|고성군]]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학교]] 졸업 후 [[만주국]] 펑톈(현 중국 [[랴오닝 성]] [[선양(도시)|선양]]) [[만주국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만주군]]에서 화북흥아청향군 총사령관을 지냈으며, [[중위]]까지 진급했다. [[8.15 광복]] 후 태귀국하여 [[전라북도]] 경찰국장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6.25 전쟁]] 때 [[수도기계화보병사단|수도사단]](현 [[수도기계화보병사단]]) 22연대장으로 참전하였고, 보병 제101사단장, 중부지구 정비사령관, 2군사령부(현 [[제2작전사령부]]) 정보처장 등을 역임했다.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56년 [[김창룡]] 암살 사건과 관련하여 소환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 고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홍승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9년 [[자유당]] 나상근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의 국회의원직 상실(선거 무효 판결)로 인하여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 [[인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전형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 고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강원도 고성군-[[속초시]]-[[양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종호(1919)|김종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강원도 고성군-속초시-양양군-인제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정일권]]에 밀려 탈락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권당]] 후보로 강원도 고성군-속초시-양양군-인제군-[[양구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정재철]] 후보와 [[민주한국당]] [[허경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5년 1월 민권당 대표최고위원이 되었으나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권당이 당선자를 내지 못하여 해산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군 부문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