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www.mookas.com/20030220_youngsul_011.jpg]] [목차] == 소개 == 金潤相 [[합기도]] 3대 도주, [[용술관]] 총재 [[https://www.youtube.com/watch?v=k8D08ekrELU|#]] [[최용술]] 1대 도주의 직제자이며 [[고수를 찾아서]]에 중요한 비중으로 출연하였다. == 일생 == 1974년 [[합기도|무술]]을 수련하던 김윤상이 자신의 실력에 한계를 느끼고 마흔이 넘어 최용술를 찾아가면서 최용술과 관계가 시작되었다. 당시 극장에서는 영화 시작 전에 [[대한늬우스]]를 방영하였는데, 그때 나온 합기도 영상이 계기가 되어 무력(武歷)이 시작됐다고 알려졌다. 후일 합기도에 대한 한계를 느끼던 중[* 합기도의 기술이 발차기나 당사자의 힘 만을 사용한, 우왁스런 기술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나이가 더 들면 과연 기술을 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최용술 도주의 시연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직접 배워야 겠다는 결심을 하여 [[합기도|협회]] 측에 최용술의 소재지를 묻는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그의 근황을 모른다고 하거나, 심지어 죽었다고 하는 등이었기에,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고생 끝에[* 최용술의 소재지였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유술을 가르친다는 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다, [[장인목]]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김윤상에게 '''나도 최 영감처럼 대동류를 했으니, 나에게 배우는 것이 어떠한가?'''는 제안을 하였다고 증언한다.] 최용술을 만나 배울 기회가 생겼으며, 첫 수련 때부터 흰띠를 매고 시작하였다고 한다. [* 사범급이었던 당시 김윤상과 일행들이 검은 띠를 매자, 최용술이 불같이 화를 내며 처음부터 다시 가르쳤다.] 김윤상의 술기가 깊어지던 시기, 최용술 도주는 그에게 직접 도장을 하라는 충고를 하였고, 그리하여 만들어진 도장이 [[용술관]]이다. 최용술 도주가 죽기 1년 전인 1985년에 9단을 직접 수여받았고, 2002년 4월에는 최용술 대구종가로부터 정식으로 합기유술의 3대 도주[* 2대는 최용술의 아들인 최복열이었으나, 합기도 통합 시도 중 사망하였다. 그 이외에는 장진일 또한 2대 도주로서 해외를 담당토록 하였다.]로 추대되었다. 최용술의 손자 또한 김윤상 도주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 지금은 독립하여 또 다른 단체를 만들었다.] 현재 최용술의 [[대동류 합기유술|합기유술]]을 원형 그대로 가르치고 있으며 스승인 최용술과는 각별한 관계로[* [[최용술|스승]]의 행적을 따라 [[https://images.app.goo.gl/13uEX6WuGSLLo5Ze7|대동류 종가를]] 비롯하여 수시로 일본 각지를 방문하며, 스승의 흔적을 발굴하고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 그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운동을 쉬지 않고 합기도만 고집하는 이유도 수련을 계속하라는 최용술 도주의 유지를 받드는 의미라 하였다. 유파가 난립하고 스승을 부정하는 일도 생기던 이전의 사례들과는 대비된다. == [[용술관]] == 문서 참조 == 여담 == [[고수를 찾아서]]에 출연해 자신의 술기와 내공을 보여주었다. 건장한 성인을 그것도 십수년 이상 합기도를 수련한 제자나 타 유파 고수들을 [* 무토에서 올린 용술관 특집 3부작에서는 합기도 협회 소속의 도장 사범이 용술관을 방문하여 김윤상 도주와 제자들에게 술기를 받기도 했다.] 손가락 하나로 무력화하는 믿기 힘든 실력을 보여주었다. [* 당시 합기도 협회 소속 사범은 2017년 현재 [[브라질리언 주짓수]]을 수련 중이며, 용술관에서의 경험을 흥미로운 기억으로 회고하고 있다.] [[분류:무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