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조선의 부원군(국구))]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7e2f22><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7e2f22, #7e2f22 20%, #7e2f22 80%, #7e2f22)" {{{#ffd400 '''김우명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서인)] ---- [include(틀:노론)] ---- }}} || ||<-3><tablealign=right><table width=400><tablebordercolor=#7e2f22><bgcolor=#7e2f22> {{{#gold '''조선 현종의 장인 | 명성왕후의 부친'''[br]{{{+1 '''청풍부원군 김우명[br] 淸風府院君 金佑明'''}}}}}} || ||<-3>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김우명 초상화.jpg|width=100%]]}}} || ||<-2><bgcolor=#7e2f22> '''[[군호|{{{#gold 군호}}}]]'''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 || ||<-2><bgcolor=#7e2f22> '''[[시호|{{{#gold 시호}}}]]''' ||충익(忠翼) || ||<-2><bgcolor=#7e2f22> '''[[|{{{#gold 품계}}}]]'''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 ||<-2><bgcolor=#7e2f22> '''[[본관|{{{#gold 본관}}}]]''' ||[[청풍 김씨|청풍]](淸風) || ||<-2><bgcolor=#7e2f22> '''[[이름|{{{#gold 이름}}}]]''' ||우명(佑明) || ||<-2><bgcolor=#7e2f22> '''[[자(이름)|{{{#gold 자}}}]]''' ||이정(以定) || ||<-2><bgcolor=#7e2f22> '''{{{#gold 부모}}}''' ||[[김육]], [[파평 윤씨]](坡平 尹氏) || ||<-2><bgcolor=#7e2f22> '''{{{#gold 부인}}}''' ||덕은부부인 [[여산 송씨]](礪山 宋氏) || ||<-2><bgcolor=#7e2f22> '''{{{#gold 자녀}}}''' ||5남[* 아들 김만주(金萬周), 김석익(金錫翼), 김석연(金錫衍), 김석구(金錫耉).] [[명성왕후|1녀]] || ||<-2><bgcolor=#7e2f22> '''{{{#gold 묘소}}}''' ||[[강원도]] [[춘천시]] 서면 안보1리 || ||<|2><bgcolor=#7e2f22> '''{{{#gold 생몰[br]기간}}}''' ||<bgcolor=#7e2f22> '''[[음력|{{{#gold 음력}}}]]''' ||[[1619년]] ~ [[1675년]] [[6월 18일]](향년 56세) || ||<bgcolor=#7e2f22> '''[[태양력|{{{#gold 양력}}}]]''' ||[[1619년]] ~ [[1675년]] [[8월 9일]] || ||<-2><bgcolor=#7e2f22> '''{{{#gold 붕당}}}''' ||[include(틀:노론(붕당))]([[한당(붕당)|한당]]) || [목차] [clearfix] == 개요 == [[명성왕후]]의 아버지이자, 현종 말기부터 숙종 초기까지 한당을 이끈 문신이다. == 생애 == 1619년 경기도 가평군 잠곡 출생으로, 군자감판관을 지내고 사후 [[좌찬성]]에 추증된 김비(金力)의 증손, 참봉이자 증영의정인 김흥우(金興宇)가 조부, 그리고 아버지는 [[김육]]이다. [[인조]] 20년인 1642년, 진사가 되었으며 7년 뒤엔 강릉 참봉과 세자익위사 세마(洗馬)로 관직을 시작했다. 1651년에 딸인 [[명성왕후]]가 당시 세자였던 [[현종(조선)|현종]]의 빈으로 간택이 됐고, 그 뒤 부솔, 공조좌랑를 지내다 우부승지, 가주서로 승진했다. 평시서령(平市署令), 공조좌랑, 공조정랑, 장악원 첨정(僉正), 부평부사(富平府使), 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 예빈시정(禮賓寺正)과 제용감정(濟用監正) 등을 지냈다. [[김육]]이 죽자 3년상을 마친 뒤, [[한당(붕당)|한당]]의 영수가 되었다. === 산당과의 갈등 === 현종이 즉위하자 국구로서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에 책봉과 동시에 당연 겸직인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로 제수되었다. 의원(尙衣院), 사도시(司導寺), 장악원(掌樂院), 빙고(氷庫)의 도제조직과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과 호위대장(扈衛大將)도 겸임했다. [[산당]]과 [[한당(붕당)|한당]]의 관계만큼 영수였던 [[송시열]]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1674년에 대부복상문제(代父服喪問題)[* 아버지가 실성했을 때 그 아들이 상주가 되자 문제가 생겼다. 지금와선 [[예송논쟁]]과 비슷하게 보여 굉장히 쓸데없게 보이지만, 그땐 [[성리학]]의 교조화가 진행되었기에 유자들은 이런 것에 목숨을 걸었다.]가 부상하고 [[남인]]과 [[서인]]의 대립 때 [[허적]]의 의견에 동조해 외서내남(外西內南)이라는 평을 불러왔다. 사실, [[송시열]]의 스승인 [[김집]]은 자신의 아버지를 대표하는 키워드인 [[대동법]]을 반대해 [[김육]]과 갈등을 빚었다. 그런데 김육의 장례식 때 국왕만 쓸 수 있는 수도(隧道) 사용에 대해 지적하자, 민유중이 탄핵을 했다. 이 사건들을 거치며 김우명의 반송시열, 반산림 이념은 강해졌다. 그 뒤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다시 제수됐고, [[예송논쟁]] 때 [[남인]] 측을을 지지하며 [[탁남]]인 [[허적]]과 협력하여 송시열과 산당을 공격했다.[* 여기선 숨겨진 사정이 있다. [[송시열]]은 한당 계열이면서 능력 있고, 왕의 신임도 받는 그의 형 김좌명과 손잡으려 했으나, 떄맞춰 그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실현하지 못했다.] === 숙종 즉위 후 === [[숙종(조선)|숙종]]의 즉위 후, 숙종은 아버지 현종과 비슷한 산당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 외척이자 외조부인 김우명을 포함한 경주 김씨는 신뢰를 받았다. [[인평대군]]의 세 아들인 복창군과 복선군, 복평군(이른바 삼복)은 그와 그의 가문만큼이나 신뢰를 받았으나, 그의 딸이자 대비인 명성왕후는 역시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아버지인 그에게[* 그 역시 송시열을 밀어내는데 앞장섰지만, 종친들이 권력을 가지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부탁을 한다. 그해 2월 삼복 중 복창군과 복평군을 탄핵하는 소를 올렸으나, 관련자들이 모두 부인해 어영부영 넘어갔다.[* 홍수의 변이라 불린다.] 이 사건으로 인해 [[허적]]과 [[윤휴]]와 갈등이 생긴다. 결국 김우명은 종친들을 무고한 사람이 되어 [[남인]]으로부터 지속적인 탄핵을 받았다. 모든 관직을 사임한 뒤 홧김에 술만 마시다 2개월 뒤 사망했다. 무덤은 당시 [[춘성군]], 현 [[춘천시]] 서면 안보1리 산25-1에 있다. 사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충익의 시호 역시 추서되었다. == 가족관계 == * 부 [[김육]] * 모 파평 윤씨 * 형 청릉부원군(淸陵府院君) 김좌명(金佐明) * 조카 [[김석주]] * 누나 청풍 김씨[* 황도명의 아내.] * 본인 '''김우명''' * 부인 덕은부부인(德恩府夫人) 송씨(宋氏)[* 송국태의 딸.] * 장남 김만주(金萬周) * 장녀 [[명성왕후]] * 사위 [[현종(조선)|현종]] * 차남 김석익(金錫翼) * 삼남 숭록대부 김석연(金錫衍) * 며느리 전주 이씨[* [[덕흥대원군]]의 현손인 이정한의 딸. 즉 덕흥대원군의 내손녀이다.] * 손자 김도제(金道濟) * 손자 김도함(金道涵) * 증손자 김성응 * 현손자 김시묵 * 내손녀 [[효의왕후]] * 손자 김도흡(金道洽) * 사남 김석달(金錫達) * 며느리 [[전주 이씨]][* [[인평대군]]의 손녀이자 복녕군의 딸이다.] * 손자 김도협(金道浹)[* 둘 사이의 자식이 없어 김석연의 자식을 양자로 들였다.] * 첩 이름 미상 * 서자 김석구(金錫耉) [[분류:청풍 김씨]][[분류:1619년 출생]][[분류:1675년 사망]][[분류:조선/인물]][[분류:조선의 국구]][[분류:조선의 부원군]][[분류:노론]][[분류: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