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동명의 만화가, rd1=엉덩국, other2=전 제주도 정무부지사, rd2=김영택(1944))] [include(틀:5.18 민주화운동)] [[파일:attachment/김영택/김영택.jpg]] [목차] 金泳擇 1936 ~ 2014. 5. 20 >'''[[5.18 민주화운동]] 연구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는 최고 권위자.''' == 경력 == 동아일보사 편집국 기자로 입사해 30년 근무 후 기획위원으로 정년퇴직했다. 한국역사기록연구소 소장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5.18 연구를 계속하기 위하여 국민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갔으며, 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 5월 20일 사망했다. [[http://news.donga.com/3/06/20140521/63628413/1|관련 기사]] == 업적 == '5.18 光州民衆抗爭(광주민중항쟁)의 初期性格(초기성격)'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17394741&dir_id=0&field=0&unFold=false&gk_adt=0&sort=0&qvt=1&query=5.18%20%EA%B9%80%EC%98%81%ED%83%9D&gk_qvt=0&citedSearch=false&page.page=1&ndsCategoryId=10102|#]] 2005년에는 '5.18 광주민중항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17281059&dir_id=0&field=0&unFold=false&gk_adt=0&sort=0&qvt=1&query=5.18%20%EA%B9%80%EC%98%81%ED%83%9D&gk_qvt=0&citedSearch=false&page.page=1&ndsCategoryId=10102|#]] '''5.18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건 이 논문이 최초다. 그리고 2014년 기준으로 아직까지 이 논문이 유일하다.''' 다만 5.18 자체가 아닌, 5.18 특별법을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은 이전에 나온 적은 있다.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11576208&scholarDocType=1&scholarDocType=3&dir_id=1&field=0&unFold=true&gk_adt=0&sort=0&qvt=1&eyear=2000&query=%EA%B4%91%EC%A3%BC%EB%AF%BC%EC%A4%91%ED%95%AD%EC%9F%81&gk_qvt=0&syear=1988&citedSearch=false&page.page=3&ndsCategoryId=10302|#]] 2010년에 [[4.19 혁명]] 기념일에 맞춰 자신의 역대 5.18 연구를 총정리한 학술도서를 발매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267041|#]] 734쪽이 넘는 큰 책인데 값은 정가가 3만 6천원이다. 이 책은 2011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뽑히기도 했다. [[http://www.nas.go.kr/info/notice/view.jsp?NP_Code=10000043&NP_DataCode=20000014&NGB_Code=10001309&searchKey=NGB_SUBJECT&searchVal=우수학술도서&pg=3|#]] 역시나 '''학술원에서 우수학술도서로 뽑힌 5.18 학술도서는 이것이 최초.''' 사학계의 5.18 연구 중 최고의 업적을 이뤘다고도 평가할 수 있겠다. 이러한 업적이 있어서 그런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낸 '한국민주화운동사 3 | 서울의 봄부터 문민정부 수립까지'에서 [[5.18 민주화운동]] 부분은 김영택 기자가 맡았다. 해당 책은 여기서 내려받을 수 있다. [[http://www.kdemo.or.kr/2014/book/data/530|#]] [[광주학살]]에서 헬기사격의 진위여부에 논란이 있을 때 박사학위논문부터 꾸준하게 헬기의 기총사격설을 지지했는데[* 김영택 박사의 박사학위논문이나 5월 18일, 광주 - 광주민중항쟁, 그 원인과 전개과정 참고, 역사공간 참고] 2016년 이후 사실이 입증됐다. 안타깝게도 헬기사격 사실의 입증을 보지 못하고 별세하셨다. == 기타 == 5.18을 알기 위해선 그의 연구를 꼭 들여다 봐야 한다. 5.18을 왜곡하는 파시스트, 권위주의적 보수 세력 뿐만 아니라 5.18을 잘못 아는 우파자유주의, [[진보주의자]], [[민주화]] 운동가들도 착각하는 사실을 지적하며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5.18 민주화운동|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 단어가 [[광주학살]]에서 벌어진 무차별 살육과 신군부의 쿠데타를 은폐, 순화하는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진보진영에서는 김영택 씨 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5.18 민주화운동|광주민주화운동]]이란 말보다 '''광주민중항쟁'''을 더 선호한다. 이와 달리 80년대 시절에서는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노태우 정권 이후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용어가 자리잡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진사]] 김병규(金秉圭, 1865~1936)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당시 [[고창군|고창]]·[[영광군|영광]]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태원(1870)|김태원]] 의진에 참모로서 가담하였다. 1907년에는 [[장성군|장성]]의 [[기삼연]] 의병장과 합세하여 [[나주시|나주]]·[[함평군|함평]] 까지 세를 떨치며 계속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같은 해 함평 월현(月峴)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체포당하여 혹형을 당하기도 한다. 따라서, [[독립운동가]]이다. 한동안 자료 부족의 이유로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에서 수차례 탈락하기도 하였으나, 그가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익힌 역사 기술로 수 년 간 자료를 추적해 그 근거를 밝혀내었고 2003년 8월 15일 비로소 정부에서 항일의병투쟁에 대한 공적을 인정하여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5월 18일, 광주 - 광주민중항쟁, 그 원인과 전개과정 13쪽][[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170595|관련 기사]] [[https://www.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9052&ipp=10000|독립유공자 공훈록]] 왜인지 모르겠는데 5.18 유사역사학 세력은 그의 증언이나 연구결과를 자신들의 유사역사학에 편집해서 써먹는 경향이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2&aid=0002707015|관련 기사]] 그는 현장을 객관적으로 증언했는데, [[체리피킹|그걸 자기들의 헛소리에 맞게 편집해서 써먹는 것이다]]. 김영택의 증언을 날조하는 경우도 있다. [[5.18 역사왜곡/TV조선]] 문서에서 '시위대에는 복면을 쓴 이들이 있었다. 이는 북한군이 개입했음을 나타내는 근거다.'에서 임천용의 말을 참고바람. 왜곡세력들이 김영택의 증언을 어떻게 왜곡해서 써먹는지 잘 알 수 있다. == 펴낸 책 == * 실록 5.18 광주민중항쟁 * 한국전쟁과 함평양민학살 * 5월 18일, 광주 - 광주민중항쟁, 그 원인과 전개과정 ('''2011년 우수학술도서''') * 한국민주화운동사 3 | 서울의 봄부터 문민정부 수립까지 (공저)[* 당연히 [[5.18 민주화운동]] 부분을 서술하였다.] [[분류:1936년 출생]][[분류:2014년 사망]][[분류:한국의 역사학자]][[분류:한국사학자]][[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5.18 민주화운동/관련 인물 및 단체]][[분류:기자]][[분류:동아일보 관련 인물]][[분류:고려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