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fff 김영진의 역대 등번호}}}''' || ||<bgcolor=#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5><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fff 삼성 라이온즈}}}]] {{{#fff 등번호 20번}}}''' || || [[이용철(야구)|이용철]](1993~1994) || → || '''김영진(1995~1997)''' || → || [[강동우]](1998~1999) || ||<-5><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fff 삼성 라이온즈}}}]] {{{#fff 등번호 12번}}}''' || || [[이태일]](1990~1997) || → || '''김영진(1998~2001)''' || → || [[카를로스 바에르가]](2001) || ||<-5><bgcolor=#f7000d> '''[[한화 이글스|{{{#fff 한화 이글스}}}]] {{{#fff 등번호 22번}}}''' || || [[심광호]](1996~1999) || → || '''김영진(2001)''' || → || [[심광호]](2002~2008) || }}} || ---- [[파일:삼성_김영진.jpg]] || '''이름''' || 김영진(金榮振) || || '''생년월일''' || [[1972년]] [[4월 9일]]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신지''' || [[서울특별시]] || || '''학력''' || [[서울 청원고등학교 야구부|동대문상고]] - [[동국대학교|동국대]] || || '''포지션''' || [[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95년/신인드래프트|1995년 2차 1라운드 지명(전체5번, 삼성)]]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95~2001) [br] [[한화 이글스]] (2001) || [목차] == 소개 == 전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소속의 야구 선수. [[삼성 라이온즈]]의 암흑기를 상징할 만한(...) [[포수]]. 삼성 라이온즈에서의 이미지만 보자면 [[나균안]][* 포수 시절 한정. 나균안으로 개명하고 투수가 된 현재는 2군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의 삼성 버전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서울 청원고등학교 야구부|동대문상고]][* 청원정보산업고로 되어 있었는데, 이거는 1998년에 바꾼 교명이다. 2000년에 야구부를 청원고에 이관한 후 2003년에 청원여자고등학교로 전환.]와 [[동국대학교]]를 졸업했다. == 선수 경력 == [[1990년대]] 중반의 [[삼성 라이온즈]]는 호쾌한 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마운드가 문제였는데, [[김상엽]], [[박충식]], [[김태한]] 정도가 간신히 지탱하는 상황이라 [[1994년]] 이후에는 계속 가을에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경산 볼파크]]에서 [[556#s-4|마무리 훈련만 하는 실정]]이었다. 마운드 외에 포수진 또한 문제였다. 원년부터 함께 해온 [[이만수]]가 체력 등의 문제로 주전 포수로 출전하기 힘들게 되자, [[1988년]] [[최동원]]↔[[김시진]] [[트레이드]] 때 같이 온 [[김성현(1963)|김성현]]이나 [[1993년]] 시즌 중 [[빙그레 이글스]]에 [[이상목]]을 주고 데려온 [[박선일]] 등이 포수로 돌아가면서 출전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박선일]]과 [[김성현(1963)|김성현]]마저 각각 방출과 [[트레이드]]로 [[1996년]]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났다. 덕분에 [[1997년]]부터 김영진이 주전으로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었는데, 정말 안습 크리의 연속이었다. 어깨나 블로킹은 쓸 만했지만, 단 한 번도 타율이 1할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통산 타율 1할 5푼'''[* 못 치니까 9번 타순에 기용되는 건 둘째치고, 나중에는 아예 타격 폼을 번트를 대는 듯한 폼으로 바꿨다. '''어차피 못 치는 건 매한가지니까 영 안되면 번트라도 대라'''는 뜻에서 그렇게 치게 했다고.][* 이 선수가 94경기만 더 나갔다면, 염경엽을 능가하는 통산타율 최하위가 되었을 것이다. 김영진 통산타율이 1할 5푼, 염경엽은 그나마 나은 1할9푼5리.]에 극악의 투수 리드 등으로 상대 팀 팬들마저 측은지심을 들게 할 정도였다. [[전병호]]가 사인문제로 [[백인천]]과 마찰을 빚을 때 사인을 잘못 읽었던 포수가 바로 김영진이며, 이 일로 백인천이 화를 이기지 못해 뇌출혈로 쓰러져 [[조창수]]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다.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김성근]]이 이끄는 [[쌍방울 레이더스]]를 꺾고 플레이오프에서 [[LG 트윈스]]에 안타깝게 져 고배를 마셨는데 사실 2연패 뒤 2연승을 기록했고, 5차전에서도 6회까지 2-0으로 앞서 리버스 스윕을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김영진이 [[포일(야구)|포일]]을 시전한 것을 시작으로 폭풍 7실점(...)하면서 역전패하면서 2승 3패가 된 것이었다. 이렇듯이 삼성의 부침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통산 sWAR*이 -2.97로 KBO에서 꼴찌__였__'''다.[* -2보다도 못하는 선수는 김영진과 야수로 [[권두조]], [[염경엽]], 투수로는 해태 출신 최상주가 있다. 이 투수는 85년 '''무려 선발투수로 12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하고도 5승을 챙겼다.''' ~~이런 인물보다 막장인게 김영진~~] 다행인지 불행인지 2010년대 후반에 [[나균안|같은 포지션의 후배]]가 무서운 속도로 마이너스 war을 적립하며 김영진의 이름을 수시로 소환하고 있다. 그리고 [[http://www.statiz.co.kr/dailywar.php?opt=0&sopt=2019-09-06&popt=team&te=%EB%A1%AF%EB%8D%B0|2019년 9월 6일 경기에서 -0.08을 빠르게 적립하며]] 최하위를 빼앗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김영진은 6시즌에 걸쳐 달성한 기록이지만, [[나균안|이 후배]]는 3시즌, 실질적으로는 '''단 2시즌'''만에 달성했다.[* 나종덕의 커리어 하이인 2017 시즌은 단 5경기 나와 4타수 2삼진만을 기록했다.] === [[1997년]] [[8월 23일]] [[안습]]의 절정,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낫아웃]] 사건 === 무엇보다 김영진이라는 이름이 야구 팬들의 기억 속에 깊이 남게 한 사건은, [[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1997년/8월/23일|8월 23일]],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더블헤더|DH]] 1차전에서 일어났다. [youtube(SZOplXMCWXw)] 4:1로 삼성이 이기고 있던 9회초 쌍방울의 공격 2사 주자 1, 2루 상황에서 대타로 타석에 들어온 [[장재중]]이 볼 카운트 2-1[* 그 당시에는 S-B-O 순서로 전광판에 표기했다. [[2012년]]부터 [[미국]]처럼 B-S-O 순서로 표기한다.]에서 원 바운드 볼을 헛스윙했다. 투수 [[김태한]]이 던진 원 바운드 볼을 타자가 힘차게(?) 휘둘렀지만 맞지 않고 그대로 포수 미트로 들어가서 [[김동앙]] 주심은 삼진을 선언했고, 동시에 김영진은 관중석으로 공을 던져 버렸다. 야구 규정상, '''2아웃 일때''' 2S에서 원 바운드 볼을 헛쳤을 때는 타자한테 스트라이크가 주어져서 [[삼진(야구)|삼진]] 처리되지만,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아웃되지 않는다]]'''. 병살 유도를 방지하기 위해 1루에 주자가 있을 경우 낫 아웃 조건이 되더라도 낫 아웃이 적용되지 않지만, 2아웃일 때는 병살이 필요없기 때문에 1루에 주자가 있어도 낫 아웃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포수가 타자 주자를 태그하거나 공을 1루로 보내야 아웃 처리되는데…. 당시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사령탑이던 [[백인천]] 감독이 덕아웃을 뛰쳐나오며 1루로 공을 던지라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이미 공은 관중석으로…. ~~셀프 [[포일]]~~ 그리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던 [[장재중]]은 쌍방울 주루코치와 선수단의 외침에 황급히 1루로 달려갔다. 심판진은 경기 종료를 선언한 후 3루측 본부석까지 이동했고 당시 중계 방송사인 [[SBS]]는 엔딩 자막을 냈으며 KBO 홈페이지에는 승패 투수까지 띄워둔 상황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본부석으로 들어가는 심판진 앞을 막아서서 강력히 항의했고 일단 주심은 [[김성근]] 감독을 퇴장 조치했다. 4심 합의 후 오심을 인정하고, 야구 규칙에 의거하여 김영진이 [[장재중]]을 아웃시키지 않고 그냥 관중석으로 공을 던져서 볼데드를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악송구에 대한 안전 진루권을 부여, 타자와 주자를 모두 2루씩 진루시킨 후 경기를 재개했다(4:2 2사 2, 3루). 이후 [[최태원(야구)|최태원]]의 2타점 동점 적시타 등에 힘입어 쌍방울은 4:1로 진 경기를 4:6으로 역전승했다. 물론 [[백인천]] 감독도 김영진에게 1루로 공을 던지라고 덕아웃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경기가 끝났다는 안도감에 도취된 김영진은 감독의 지시를 듣지 못하고 이런 일을 저질렀다. [[백인천]] 감독의 혈압을 왕창 올리는데 일조한 셈. 여담으로 이 해프닝은 [[2010년]] 이후로 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2010년 KBO의 룰 개정에서 낫 아웃의 타자주자 아웃 시점을 기존 타자가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시점'''에서 '''타자가 타석 주변 흙으로 이뤄진 서클을 벗어나는 시점'''으로 변경했기 때문. 이는 2009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룰 개정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2010년 이후의 룰에 따른다면 타자 [[장재중]]은 타석 주변 서클을 벗어났기 때문에 자동으로 아웃 처리된다. === 낫아웃 사건 후 여파 === 김영진의 낫아웃 사건에 충격과 분통을 터뜨린 [[삼성 라이온즈]]는 이후 많은 돈을 들여 동시에 여기저기서 포수들을 미친듯이 수집했다. [[1998년]] 해태의 [[정회열]], [[1999년]] 시즌 중에는 두산의 [[진갑용]]을 현금 트레이드까지 하면서 데려오는 데 이어 2000년에는 FA 시장에서 [[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까지 질렀다. 결국 이 분노의 영입 속에 [[2000년]] 김영진은 주전 자리를 완전히 뺏겨 그 해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001년]] [[4월 27일]] 내야수 [[김승권]]을 상대로 외야수 조정권과 함께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그 해 1군 7경기에 그친 뒤 시즌을 마치고 소리 없이 은퇴했다. 결국 삼성이 수집한 포수 이적생들 중 진갑용이 금지약물의 힘으로 성적을 냈고, 삼성은 한국시리즈가 무산된 1980년대 이후로 2002년에는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뒤 우승을 여러 번 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약물 적발 이후 진갑용의 성적이 약물 이전으로 롤백[* 롤백이라기보다는 엄밀히 약빨이 세월에 따라 저하되며 부상이 잦아졌다고 보는게 적절할 수 있다.]하기 시작하면서 삼성은 또다시 포수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지영(야구선수)|이지영]]으로 버티다가 드디어 오랜만에 [[현질]]로 [[강민호]]를 영입한다. [[강민호/2019년|하지만...]] === 여담 === 사실 위의 모든 사실은 애교로 봐 줄 수 있는데, 바로 [[삼성 라이온즈]]가 1995 드래프트 때 투수 '''[[진필중]]을 대신해서 지명했던 선수가 김영진'''이었기 때문이었다. ~~[[류거이|진거김]]~~ 그래도 변명거리가 있는 게, 대학 시절만 해도 김영진과 [[진필중]]은 넘사벽이었다. 김영진은 [[동국대학교|동국대]] 시절 4년 동안 줄곧 [[태릉선수촌]] 밥을 먹은 91학번 최고의 ~~[[신경현|체고의]]~~ 포수였지만, [[진필중]]은 [[중앙대학교|중앙대]] 4학년 당시 어깨 부상으로 인해 1승밖에 거두지 못했던 투수였다. 하지만 프로에 들어와서 위상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야만없이지만, 만약 [[진필중]]이 두산에서만큼 모습을 보이며 삼성에서 활약했다면 굳이 [[임창용]]을 '''[[양준혁]]+현금 20억'''을 쓰며 데려오지 않아도 될 뻔했고,[* [[진필중]]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임창용]]과 쌍벽을 다투는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다.] 돈성이라는 이미지에 박히지 않을 뻔했다. 게다가 진필중은 [[1995년 한국시리즈]]에서 6차전 승리투수가 되면서, 2승3패로 몰리는 상황에서 숨을 돌림과 동시에 OB가 패권을 가져갔으니, ~~그렇다면 롯데가 우승을 못한 건 [[2020년]] 현재 28년이 아니라 25년이 됐을 수도 있다~~ 프로야구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드래프트였다고 볼 수 있다. [[이문한]] 전 삼성 [[스카우트]]의 회고에 따르면, 자신은 [[진필중]]의 잠재력을 믿고서 2차지명 2라운드에서 뽑기로 [[진필중]]의 가족과 약속했는데, OB 측에서 이를 간파하고 2라운드에서 [[진필중]]을 뽑아서 '''[[멘붕|허탈]]'''해했었다고 한다. 전성기가 지난 [[2003년]] 이후 [[먹튀]]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진필중]]은 [[임창용]]과 더불어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군림했다. 더군다나 삼성이 두산에게 하극상을 당했던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양 팀 투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철벽으로 막았던 그를 생각하면 안습의 결정판이다.[* 반대로 임창용은 두산의 우승이 결정된 6차전에 등판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을 질러 [[1997년 한국시리즈]] 당시의 씽씽투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 연도별 성적 == ||<-15><bgcolor=#000000> {{{#ffffff 역대기록}}} || ||<rowbgcolor=#0066b3>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타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4사구}}} || {{{#ffffff 장타율}}} || {{{#ffffff 출루율}}} || || 1995 ||<|6> [[삼성 라이온즈]] || 36 || 31 || .161 || 5 || 0 || 0 || 0 || 3 || 4 || 0 || 4 || .161 || .250 || || 1996 || 90 || 149 || .134 || 20 || 4 || 0 || 0 || 6 || 9 || 1 || 8 || .161 || .178 || || 1997 || 76 || 156 || .167 || 26 || 4 || 3 || 3 || 14 || 17 || 0 || 19 || .288 || .257 || || 1998 || 100 || 178 || .180 || 32 || 10 || 0 || 0 || 8 || 8 || 0 || 14 || .236 || .240 || || 1999 || 97 || 189 || .138 || 26 || 4 || 0 || 2 || 13 || 8 || 0 || 11 || .190 || .185 || || 2000 ||<-13> 1군 기록 없음 || ||<rowbgcolor=#ff6600>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타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4사구}}} || {{{#ffffff 장타율}}} || {{{#ffffff 출루율}}} || || 2001 || [[삼성 라이온즈|삼성]] / [[한화 이글스|한화]] || 7 || 11 || .182 || 2 || 0 || 0 || 0 || 1 || 1 || 2 || 3 || .182 || .357 || ||<-2><color=#373a3c><rowbgcolor=#ffff99> '''[[KBO]] 통산'''[br](6시즌) ||<color=#373a3c> 406 ||<color=#373a3c> 714 ||<color=#373a3c> .155 ||<color=#373a3c> 111 ||<color=#373a3c> 22 ||<color=#373a3c> 3 ||<color=#373a3c> 5 ||<color=#373a3c> 45 ||<color=#373a3c> 47 ||<color=#373a3c> 3 ||<color=#373a3c> 59 ||<color=#373a3c> .216 ||<color=#373a3c> .220 ||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영진, version=91)] [[분류:동국대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ㄱ]][[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72년 출생]][[분류:포수]][[분류:우투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