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clearfix] == 개요 == 김영일 1955년 ~ 2000년 사망 추정 북한의 정치인이자, 외교관. --태조-- [[김일성]]의 아들이자 [[김정일]], 김만일,[* 1944년 ~ 1947년 물놀이를 하다가 익사.] 김경희의 이복동생이자 김경진, [[김평일]]의 친동생. 즉, [[김일성]]의 '''4남'''이다. 일반적으로는 3남으로 인식된다. == 생애 == 형 [[김평일]]과 함께 김영일은 [[김정일]]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의 위세를 믿고 방자하게 굴어 담임선생에게 '''선생 동무가 우리 아버지보다 세오?'''라고 건방지게 굴며 선생의 지시를 따르지 않자, 김일성이 김영일이 보는 앞에 담임선생을 불러다 놓고 다 내가 자식 교육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사과하는 쑈를 했고 그 이후로 김영일은 담임선생의 말을 잘 들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권력욕이 대단하고 공작에 능했던 김정일은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땡전뉴스|선전영화]]를 대폭 만들고 주체사상탑을 건설했으며 자신이 곁가지라 부르는 김성애 일가의 비리를 계속 폭로했다. 이러한 김정일의 노력(?)으로 [[김정일]]은 아버지처럼 전제군주의 권력을 손에 쥐었고, 형 [[김평일]]이 유고슬라비아 주재 무관으로 쫓겨나자 그 동생 김영일도 쫓겨났다. 김일성 종합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한 다음에 동독으로 유학을 갔고 북한 제2자연과학원 공학연구소에 근무하면서 한때 잘 나갔으나 2년 만에 김정일의 압력으로 쫓겨났다. 누군가 김영일과 대화하기만 하면 즉각 조직지도부 담당지도원이 '''무슨 생각으로 곁가지와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가?'''라고 마구 추궁을 하니 일을 할 수가 있나. 담배 한가치만 나눠 피워도 추궁이 매서웠으니 되는 일이 있을 리가 만무하고 결국 독일 주재 북한대표부 과학참사관으로 쫓겨났다. [[2000년]] 5월 16일, 어떤 대북소식통은 김영일이 독일에서 간경화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하필이면 그때가 [[남북정상회담|중대한 행사]]가 열리기 직전이라서 김영일이 독살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김영일이 최근 간 질환을 앓아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김평일]]에 비해 활동이 줄어든 것이다.'라고 확인사살했다. 여담으로 김정일 정권 말기에 북한의 내각 총리를 지냈던 [[김영일(1944)|김영일]](2007년~2010년 재임)과는 동명이인이다. [[분류:북한의 정치인]][[분류:김일성 가문]][[분류:1955년 출생]][[분류:200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