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장면 내각의 국무위원)] [include(틀: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제3공화국))] [include(틀:통일부장관)] [[파일:external/people.phinf.naver.net/yonhapnews_28441719.jpg|width=150]] 金永善 1918년 4월 25일 ~ 1987년 2월 17일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전 관료, [[정치인]]이다. 1918년 [[충청남도]] [[보령시|보령군]]에서 태어났다.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진도군]]수를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보령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반대하여 자유당을 탈당하여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였다. 이후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자유당 [[이원장]]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2공화국 출범 이후 1960년 8월 23일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그 해 8월 [[장준하]]를 찾아 국토건설사업을 맡아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장준하는 처음에 거절하였으나 그의 거듭된 요청과 [[유창순]], [[태완선]] 등의 부탁을 받고 국토건설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1960년 10월부터 경제계획의 초안을 짜서 1961년 4월에 완성시키기도 했다. [[장면]] 내각의 2인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실각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 때 다시 기용되어 국토통일원(현 [[통일부장관|통일부]]) 장관, [[주일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일제강점기]] 관료 경력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서 관료 분야에 수록되었다. == 선거이력 ==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 1950 ||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보령군) || [[무소속]] || - || '''당선''' || || || 1954 ||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보령군) || [[자유당]] || - || '''당선''' || || || 1958 ||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보령군) || [[민주당(1955년)|민주당]] || - || 낙선 || || || 1960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보령군) || [[민주당(1955년)|민주당]] || - || '''당선''' || ||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관료]][[분류:보령시 출신 인물]][[분류:1918년 출생]][[분류:1987년 사망]][[분류:제2대 국회의원]][[분류:제3대 국회의원]][[분류:제5대 민의원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분류:민주당(1955년) 국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장관급 대사]][[분류:경성제국대학 출신]][[분류:고등문관시험 출신]][[분류:장면 내각/인사]][[분류:대한민국의 장관급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