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rokps.or.kr/1096.jpg|width=150]] 金永昞 1929년 02월 20일 ~ 1999년 05월 24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29년 [[경상남도]] [[김해시|김해군]]에서 태어났다. [[마산고등학교]], [[동아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63년 [[민주공화당]] 총무국장이 되면서 정치에 입문하였다. 1965년 한국해외개발공사 전무이사에 임명되었다. 1967년 [[황종률]] 무임소[[장관]]의 경제 담당 보좌관([[차관]]급)에 임명되었다. 이후 1968년 민주공화당 [[윤치영]] 당[[의장]][[서리]] [[비서실장]]으로 당에 복귀하였다. 1969년 훈련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 [[김택수]] 대신 민주공화당의 [[공천]]을 받아 경상남도 김해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남도 김해군-[[양산시|양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1967년)|신민당]] [[신상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6년 민주공화당 당기위원회 부위원장, 청소년대책 소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김택수에 밀려 다시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재우(정치인)|이재우]] 후보와 [[민주한국당]] [[신원식(1936)|신원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7년 [[신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남도 김해시-김해군 선거구에 출마하려 하였다가 공천 경합자인 배정일의 반발로 인하여 결국 공천이 다시 배정일에게 돌아갔다. [[분류:1929년 출생]][[분류:1999년 사망]][[분류:김해시 출신 인물]][[분류:제8대 국회의원]][[분류:제9대 국회의원]][[분류:민주공화당(1963년) 국회의원]][[분류:마산고등학교 출신]][[분류:동아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