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일:external/bimage.interpark.com/5420_20090810181230_.jpg|width=300]] || || '''이름''' || 김소진(金昭晉) || || '''직업''' || [[소설가]] || || '''출생''' || [[1964년]] [[1월 17일]][* 1963년 음력 12월 3일생이다.], [br]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 || || '''사망''' || [[1997년]] [[4월 22일]] (향년 33세) || || '''가족''' || 배우자 [[함정임]] || || '''학력''' || [[서라벌고등학교]][br][[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 || '''약력''' || 前 [[한겨레신문]] 기자 || [목차] == 생애 == [[1964년]] [[1월 17일]]에 태어났다. 아버지 김응수는 실향민 출신이다. 1967년에 [[서울특별시|서울]]로 이사와 미아초등학교(당시는 미아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중학교와 [[서라벌고등학교]]를 거쳐 1982년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운동권]]의 가투(街鬪)에 참여하려고 했으나, 별달리 실행하지 못하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주요 습작 대상은 [[이문구]], [[황석영]], [[박완서]]였다. 1985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1년 간 [[방위병]]으로 복무했다. [[서울대학교]] 졸업 후에는 1990년 [[한겨레]]신문에 입사, 교열부에서 근무했다.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그는 여러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등을 발표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995년에 한겨레신문을 퇴사하고 전업 작가를 선언했다. 1993년에는 소설가 [[함정임]]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을 두었다. 아들은 [[부산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97년 2월에는 계간지 한국문학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3월 초 서교동에서 위염 때문에 내시경 검사를 받던 중, [[췌장암]] 진단을 받고 3월 11일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4월 22일 연희동 동서한방병원에서 타계했다. 그의 나이 불과 33세 때였다. == 작품 성향 == 토속적인 어휘와 [[구어]]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청년 시절 우리말 사전 한 권을 통째로 필사했다고 하며, 그 덕분인지 맛깔나는 [[대한민국]] 고유어의 사용이 돋보인다. 대표작으로는 [[교과서]]에도 실린 단편소설 [[자전거 도둑]]이 있다.[* 이 작품은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도 출제되었으며, 김소진의 다른 작품인 '목마른 뿌리'는 2021 EBS 연계교재에 실리기도 했다.] 그가 습작 대상으로 삼았던 [[박완서]]의 작품 중에도 동명의 제목이 있다. [[분류:1964년 출생]][[분류:충주 김씨]][[분류:1997년 사망]][[분류:철원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위암으로 죽은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