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정의당 소속]][[분류:당 대표/대한민국]][[분류:1947년 출생]][[분류:진주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진보주의자]][[분류:한국의 사회주의자]] [include(틀:정의당 대표)] [include(틀:정의당 상임고문)] ---- [[파일:김세균.gif]] [[https://www.facebook.com/sekyun.kim|페이스북]] [[https://twitter.com/skkim47|트위터]]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치학자이자 [[교수]]. [[정의당]] 前 공동대표. 작고한 김진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동생이기도 하다.[* 김진균 교수도 동생과 마찬가지로 사회참여에 힘쓴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28520?no=228520&ref=google|관련기사]]] == 약력 == *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정치외교학부|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66학번 *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 (70년~75년) * [[베를린 자유대학교]] 정치학 박사 (82년~88년) *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정치외교학부|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 前 [[국민모임]] 상임 공동대표 * 前 서울대 여성연구소 소장 * 前 정의당 공동대표 == 행보 == 1947년 [[경상남도]] [[진주시]] 태생. [[진주중학교]]와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100&key=20150612.22006192117|출처]] 1979년 [[박정희/부정적 평가/정치#s-4.3.2.10|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선고유예를 받았다. 이때 같이 구속된 인물이 [[한명숙]], [[이우재(1936)|이우재]], [[신인령]] 등등. [[노회찬]]의 증언에 따르면 1997년 [[국민승리21]]에 참여했었다고 한다. [[http://www.polinews.co.kr/mobile/article.html?no=39859|#]] [[권영길]] 대통령 후보의 유세를 하기도 했다. 1999년 기고문을 통해 [[국민승리21]]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기도 했다. '국민승리21이 주축이 된 진보정당의 건설은 한국 진보정치의 성장을 방해할 것'이라는 게 주장의 요지인데, 당시 29살의 젊은 활동가였던 [[박용진(정치인)|박용진]]의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http://new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1390|당시 기사]] [[https://m.blog.naver.com/sungilkwon/80014246409|김세균, '국민승리21 어떻게 볼 것인가]] [[http://www.laborparty.kr/bd_member/678503|박용진, 김세균 비판-진보정당은 당면투쟁 핵심]] 2013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명예교수가 되지 못할 뻔 했으나 다행히 재심사를 통과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79560.html|기사]] 2014년 12월 24일 105인 국민선언에 참여했다.[[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63521|#]] 이 105인 국민선언은 2015년 3월 29일 결성한 [[국민모임]] 창단준비위원회로 이어졌다. 자세한 사항은 [[국민모임]] 항목 참조. 국민모임은 2015년 11월 22일 [[정의당]], [[평등사회네트워크]], [[노동정치연대]]와 4자 통합을 통해 [[정의당]]과 합당했는데 이때 김세균 교수도 정의당에 입당했다. 입당 이후 [[나경채]]와 함께 정의당 공동대표를 맡았다. 정의당 3기 10차 전국위원회에서 정의당 문예위와 관련한 특별결의문이 원안으로 채택되었을 당시 수정안인 "혐오 발언(남혐,여혐)발언을 배격한다." 라는 말을 받아 들이지 않자, 김세균 공동대표는 표결직전에 여성주의자들이 [[메갈리아]]와 선을 명확히 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사실상 반대를 표명했다. 과거에 맑스주의자였으나 현재는 정동영과 같이 신당을 차리는 등 많이 온건화하여 리버럴, 사민주의자에 가까워졌다. 2016년 9월 공동대표직을 사퇴했다. [[http://www.justice21.org/78340|공동대표직을 사퇴하면서 당원들께 드리는 글(당원만 열람 가능)]] 2017년 4월 [[정의당]] [[심상정]] 당시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고문단으로 참여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0467.html|기사]] 2017년 6월 출범한 정의당 내 의견그룹 '진보좌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http://www.redian.org/archive/111708|기사]] 2019년 1월 선거권을 만 18세로 낮춰야 한다는 학계 및 법조계 성명에 참여했다. [[http://omn.kr/1gylb|기사]] 2019년 7월 정의당 동시당직선거에서 [[양경규]] 당대표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http://www.redian.org/archive/134037|기사]] [[조국(인물)|조국]] 장관 임용으로 불거진 논란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자유주의 세력]]도 [[자유한국당|수구 세력]]과 마찬가지로 기득권임을 자각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논평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469&aid=0000425460|기사]] [[분류:부산고등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