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people.phinf.naver.net/chosun_400001822.jpg|width=150]] 金聲喆 1913년 07월 03일 ~ 2004년 08월 21일 [[대한민국]]의 전 농업인, [[정치인]]이다. 1913년 [[전라북도]] 익산군(현 [[익산시]])에서 태어났다. 전주 조촌초등학교, 이리농림학교(현 [[전북대학교]] [[전북대학교/캠퍼스|익산특성화캠퍼스]]) 농과를 졸업하고 [[전라북도청]] 농사시험장 농업기술연습과정을 수료하였다. 그리고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 때 중퇴하였으며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국영기업반 연구과정을 이수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농업]]에 종사하였다. [[8.15 광복]] 직후인 [[미군정]]기부터 익산군 춘포면에서 신한공사 대장농장장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전라북도 농지위원,전라북도 수리조합장 등을 겸임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전라북도 이리시-익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전직 국회의원인 민주당 [[윤택중]] 후보, 민정당 조규완 후보 등을 꺾고 당선되었다. 1965년 [[대한민국 국회]] 보건사회위원회(현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9년 [[서상린]]([[경기도]] [[안성시|안성군]]-[[용인시|용인군]] 선거구)과 민주공화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중앙정보부]] 제3국장 출신의 [[채영철]]에 밀려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고 미원종합개발주식회사 [[회장]], 헌정회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분류:1913년 출생]][[분류:2004년 사망]][[분류:제6대 국회의원]][[분류:제7대 국회의원]][[분류:민주공화당(1963년) 국회의원]][[분류:익산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