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rowbgcolor=white><table bordercolor=#ef0010><tablealign=center><tablewidth=500> [[파일:806095.png|width=200]] || ||<-7><bgcolor=#ef0010> {{{#ffffff '''역대'''}}} [[기아그룹|{{{#ffffff '''기아그룹'''}}}]] {{{#ffffff '''회장'''}}} || ||<width=20%> 초대 [br] [[김철호(1905)|김철호]] || {{{+1 →}}} ||<width=20%> 2대 [br] 김상문 || {{{+1 →}}} ||<width=20%> 3대 [br] 민경중[* [[아시아자동차]] 사장 겸직] || {{{+1 →}}} ||<width=30%><bgcolor=#ef0010> '''{{{#ffffff 4대}}}''' [br] '''{{{#ffffff 김선홍}}}''' || ||<-2><table bordercolor=#ef0010><table align=right> [[파일:김선홍전회장.jpg|width=400]] || ||<bgcolor=#ef0010> {{{#FFFFFF '''이름'''}}} || '''김선홍''' (金善弘/ Kim Sun-hong) || ||<bgcolor=#ef0010> {{{#FFFFFF '''본관'''}}} || [[광산 김씨]][* 40세손] || ||<bgcolor=#ef0010> {{{#FFFFFF '''생년월일'''}}} || [[1932년]] [[9월 25일]] ([age(1932-09-25)]세) || ||<bgcolor=#ef0010> {{{#FFFFFF '''출생지'''}}} || [[일제강점기|일제강점기 조선]] [[전라북도]] [[익산시|익산군]](현 익산시) || ||<bgcolor=#ef0010> {{{#FFFFFF '''거주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미아동]] 인근 (추정) || ||<bgcolor=#ef0010> {{{#FFFFFF '''종교'''}}} || [[개신교]] || ||<bgcolor=#ef0010> {{{#FFFFFF '''학력'''}}} || [[웅포초등학교]]^^(1945년 졸업)^^ [br] [[전주고등학교|전북공립중학교]]^^(1951년 졸업)^^ [br]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1956년 졸업)^^ [br] [[한양대학교]] 명예공업박사^^(1994년)^^ [br] [[고려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1997년)^^ || ||<bgcolor=#ef0010> {{{#FFFFFF '''경력'''}}} || [[기아자동차|기아산업(주)]] 입사 [br] 기아산업(주) 시흥공장 기술과장 [br] 기아산업(주) 공장장 [br] 기아산업(주) 기획상무 [br] [[현대위아|기아기공(주)]] 사장 [br] 기아산업(주) 사장 [br] 한국자동차 공업협회 회장 [br] 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 [br] [[기아그룹]] 회장 [br] 공업표준협회 회장 [br] 국가과학기술 자문위원 [br] [[평화자동차]] 고문 || [목차] [clearfix] == 개요 == 前 [[기아그룹]] 회장. == 상세 == 1932년 9월 25일,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익산 웅포초등학교, 전북공립중학교 [* 현 [[전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1958년]] [[1월]], [[기아자동차|기아산업]]에 공채 1기로 입사해 말단 사원으로 출발해 90년대 국내 재계 8위의 [[기아그룹]] 총수로 등극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엔지니어 출신의 경영인이였으며, 1969년 이사, 1973년 상무이사, 한국 최초의 일관공정 시스템을 갖춘 종합자동차 공장인 [[소하동|소하리]] 공장 건설을 주도했고 1977년 전무이사를 거쳐 기아그룹 입사 32년 만에 이사에 선임된 지 12년 만인 1987년에 회장직으로 취임 되었다. 그의 별명은 '''한국의 [[리 아이아코카]].''' 1981년 [[기아산업]] 사장에 취임해 1년만에 '''[[기아 봉고|봉고]]신화'''로 적자에 허덕이던 기아를 일으킨 과정이 아이아코카 회장 재직 때의 [[미국]] [[크라이슬러]] 회생 과정과 비슷하다고 해 얻은 별명이다. [* [[기아 브리사]] 등 승용 라인업을 이미 갖췄던 기아산업은 [[제5공화국]] 시절 말도 안되고 어이 없는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인해 기아는 2륜차 사업부인 기아기연(주)를 대림으로 뺏기다시피 매각 당하고 승용 라인업이 통째로 사라져 그룹의 이윤이 한 순간에 없어지는 바람에 존망의 위기에 처했었다.][* 봉고 코치 역시 망해가는 기아의 상황에 "망하더라도 자동차 하나 더 만들고 망하자"는 작정으로 출시 시켰는데 이것이 잭팟을 터뜨렸다.] 자동차를 근본으로 하여 원가가 더 들더라도 제대로 된 차를 만들도록 지시해 기아그룹 실무진들과 마찰을 빚기도 하였으며, '새로운 경영, 새로운 일터, 새로운 기술'이라는 3대 경영방침을 세웠다. 1987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해제 됨에 따라 이 때다 싶어 [[기아 프라이드|프라이드]], [[기아 캐피탈|캐피탈]], [[기아 콩코드|콩코드]] 등을 출시하여 승용차 라인업을 강화, 그의 노력으로 1988년 자동차 생산 1백만대를 돌파하였고, 1992년 한국 최초의 독자 고유 모델 [[기아 세피아|세피아]], 이듬해 자사의 두번째 독자 고유 모델이자 최초의 도심형 SUV인 [[기아 스포티지|스포티지]] 출시 및 세계시장 개척, 1995년에는 수출 1백만대, 이듬해에는 자사의 자동차 누적 생산량 500만대 기록 등 기아그룹을 재계 8위로 성장 시켰으나, 국제 경쟁의 격화,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무리한 사업 확장, 계열사의 부실한 경영 실적, 삼성의 무리한 인수추진과 갑작스런 자금 경색에 따른 일시적 위기 등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1997년 봄부터 위기설에 휩싸이다 결국 1997년 7월 15일 부도유예협약 적용대상이 되었고, 김 회장 및 기아그룹 임직원 측에서 여러 자구책을 마련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법정관리로 넘어가고 김선홍 회장 등 경영진은 완전 퇴진하게 되었고, 기아그룹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선홍 회장은 1998년 6월 기아사태와 관련하여 부실 계열사 지급 보증, 회사 공금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 된 후 2000년 6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으며, 2002년 말 특별사면을 받았다. 2003년 가을, [[북한]] 남포공단의 [[평화자동차]] 고문을 맡으면서 업계에 복귀했지만, 얼마 못가 다시 고문직을 그만 두었으며, 오늘 날에는 교회 장로 활동과 독서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등 야인이 되었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교수 겸 고등과학원 석좌교수인 김명식씨가 김선홍 전 회장의 아들이며, 2016년 6월 1일, 호암상 시상식에서 과학상 수상을 받게 되었는데 이 날 오랜만에 김 전 회장의 근황이 사진에 실렸다. [[https://www.yna.co.kr/view/AKR20160601189800003|유명과학자 아들의 헌사에 눈시울 붉힌 김선홍 전 기아회장]] == 여담 == [[파일:1d0fc51175b94476bab1879b27b3fe77.jpg]] * 주산 [[김우중]] 前 [[대우그룹]] 회장과 친분이 있었다. [[1994년]] [[2월 18일]], [[대우자동차]]가 서울 남산의 힐튼 호텔에서 대형세단 ‘아카디아’를 발표한 날, 김선홍 회장이 기꺼이 경쟁업체의 신차 발표식에 참석, 덕담을 건넸으며, 기아그룹 사태가 터진 직후인 1997년 9월, 두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현장에서 만나기도 했다. 김우중 전 회장이 기아차 전시장을 찾아갔으며, “기아차가 삼성으로 넘어가면 대우차가 위험할 수 있다, 기아차를 지원하겠다”고 말했지만 기아차는 결국 현대차로 넘어갔고, 대우그룹도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05년에는 김선홍 전 회장이 김우중 회장의 병문안을 찾아갔다. 검찰 조사를 받던 김우중 전 회장은 심장혈관 수술로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었으며, 김선홍 회장은 쾌유를 비는 덕담과 자동차 회사를 경영하던 시절을 회고했었다고 한다.[[https://m.news.zum.com/articles/29325575|#]] 우연히도 두 노장은 같은 [[광산 김씨]]집안. 단 김우중 전 회장의 항렬이 더 높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대우그룹, 기아그룹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지금의 [[현대자동차]]와의 경쟁구도가 더 재밌었으리란 결과론도 있다. * 김선홍 기아그룹 회장의 지분은 불과 1%로 소유주가 아닌 전문경영인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 김선홍 회장은 '''비등기이사'''였다. 이 때문인지 김 전 회장은 가끔 '''"나는 기아그룹 회장으로 불리기보다 기아의 대표사원으로 불리길 원한다"''' 고 말했다. 유사한 혐의로 처벌 받은 대기업 CEO들이 채권단의 거액소송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김 전 회장의 경우는 검은 돈 1원 한푼도 갖지 않았다는 점, 털어봐야 고작 가지고 있던 마지막 재산인 서울 잠실동의 한 아파트가 전부였다. 그것도 2004년 하반기 예금보험공사의 압류로 넘어갔으며, 그 이후 현재까지 미아동의 한 서민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고 있다. 기아그룹 사태 당시 검찰도 김 회장이 이렇게 가난할 줄은 몰랐다는 후문. [[https://news.joins.com/article/443504|#]] * 김 전 회장은 자동차 독자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고, 당시 현대,대우,쌍용 등 경쟁 업체들에 비해 기술자립도가 높았던게 기아차였으며, 엔지니어의 정신으로 기술과 성능에 대한 열의 만큼은 국내 자동차 업체 중 최고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결국 이것이 과도한 기술투자와 지나치게 많은 차종의 생산을 유지함에 따른 채산성 악화가 누적되어 그룹이 위기에 빠지게 된 원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 [* 90년대의 기아차 라인업을 보면 단번에 느낄 수 있는데 프라이드와 후속차종인 아벨라가 병행 생산이 되었었고, 캐피탈과 세피아가 중복되는 등.] 단적인 예로 --직접적인 경쟁 차종은 아니였으나-- 옆 집에선 소형차를 베이스로 2도어 [[현대 스쿠프|스포츠]] [[현대 티뷰론|루킹 카]]를 만들 때 기아는 제대로 된 [[로터스 엘란|스포츠카]]를 만들어 --지금도 변한 건 없지만-- 당시 보수적인 국내 자동차 문화에서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차를 만들어 기술 과시를 했고, 이 프로젝트 역시 임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전 회장 및 엔지니어들의 의지였을 정도니... * 자사의 자동차만을 꼭 탈정도로 자사의 차들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고 한다. 대외적으로 90년대 중반까지 1세대 [[기아 프라이드|프라이드]], 그룹이 해체되고 구속되기 전까지는 [[기아 슈마|슈마]]를 개인 자가용으로 사용하였고, 관용차로는 [[기아 포텐샤|포텐샤]], [[기아 엔터프라이즈|엔터프라이즈]]를 탔었다. 그룹 회장직 퇴진 후에 개인 차량으로 어떤 모델을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 기아산업 말단 사원 시절, 선배 엔지니어들도 고장의 원인을 모른다는 기계를 고쳐 작동시키는 등, 김철호 회장으로부터 많은 신임을 받았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mablog&logNo=60118134617&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기아그룹이 전문경영인 체제가 된 이유는 김선홍에 대한 학산의 신임과 당시 김석환 삼천리자전거 회장이 기업의 규모에 겁에 질려 자신의 아버지인 김상문 회장[* 김철호 창업주의 아들]에게 스스로 기업을 맡지 못하겠다고 하소연을 했다는 점을 보면 그 배경을 알 수 있다. [[https://www.thebell.co.kr/free/content/ArticleView.asp?key=202002121102203400105459&lcode=00|#]]여느 대기업 마냥 기업의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과 달리, 기아그룹의 경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원에게 경영권을 부여해주는 등 국내 재계에서 보기 드문 케이스였다. == 수상경력 == * 대한민국 과학기술상 (1986) * 한국의 경영자상 (1986) * 은탑산업훈장 (1987) * 금탑산업훈장 (1989) * 인촌상 산업기술부문 (1991) * 제 1회 다산경영상 (1992) * 제 1회 한국공학기술상 대상 (1997) == 저서 == *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 - 고려서적. 1997. == 관련 문헌 == * 아직 갈 길이 멀다 - 매일경제신문사. 1993.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광산 김씨]][[분류:익산시 출신 인물]][[분류:1932년 출생]][[분류:서울대학교 출신]] [[분류:전주고등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