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3478><#FFFFFF><-5><:> {{{+1 [[대한민국 경찰청|[[파일:해양경찰청 OI.svg|width=45]]]] [[대한민국|{{{#003478 ''' 대한민국 ''' }}}]] [[치안정감|{{{#003478 ''' 해양경찰청 차장 ''' }}}]] }}} || ||<width=30%><:> 7대[br][[임창수]] ||<width=5%><:> → ||<width=30%><:> ''' 8대[br]김석균 ''' ||<width=5%><:> → ||<width=30%><:> 9대[br][[최상환]] || ||<-5><bgcolor=#FFFFFF><:>{{{+1 [[해양경찰청|[[파일:해양경찰청 OI.svg|width=45]]]] [[대한민국|{{{#043762 '''대한민국'''}}}]] [[해양경찰청장|{{{#043762 '''해양경찰청장'''}}}]]}}}|| ||<#008CD7><-2><:> [[이명박 정부|{{{#FFFFFF ''' 이명박 정부 ''' }}}]] ||<#C01920><-3><:> [[박근혜 정부|{{{#FFFFFF ''' 박근혜 정부 ''' }}}]] || ||<width=30%><:> 12대[br][[이강덕]] ||<width=5%><:> → ||<width=30%><:> ''' 13대[br]김석균 ''' ||<width=5%><:> → ||<width=30%><:> ,,해경안전본부장,,[br][[홍익태]] || ||||||<table bordercolor=#005BA6><-2><table align=right><#005BA6><table width=400> '''{{{#FFF 대한민국 제13대 해양경찰청장[br]{{{+1 김석균}}} [br] 金錫均 | KIM SEOK-GYUN}}}''' || ||<tablebgcolor=#FFF><-2><:> {{{#!wiki style="margin: -6px -10px" [[김석균|[[파일:김석균 해양.jpg|width=100%]]]]}}} || ||<|2> '''출생''' ||[[1965년]] [[4월 20일]] || ||[[경상남도]] [[하동군]] || || '''학력''' ||[[진주동명고등학교]] {{{-1 ([[졸업]])}}}[br][[한양대학교]] {{{-1 (행정학 / [[학사]], [[박사]])}}}[br][[서울대학교]] {{{-1 (행정학 / [[석사]])}}}[br][[인디애나 대학교]] {{{-1 (행정학 / [[석사]])}}} || || '''현직''' || || || '''경력''' ||제37회 행정고시 합격[br][[법제처]] 사무관[br][[해양경찰청]] 기획과장[br]완도해양경찰서장[br]해양경찰청 국제협력담당관[br]해양경찰청 전략사업과장[br]해양경찰청 장비기술국장[br]해양경찰청 경비구난국장[br]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br]해양경찰청 기획조정관[br]해양경찰청 차장[br][[해양경찰청장]]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전 [[경찰공무원]]으로 역대 2번째 해경 출신 [[치안총감]]([[해양경찰청장]])이다. == 생애 == 1965년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나 [[진주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진주동명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한양대학교]] 행정학과에 합격하여 상경하였다. 한양대 재학 시절 계속해서 [[행정고시]]를 준비하였으나 탈락하였고 결국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과정 재학 중이던 1993년 제37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직에 입문하였다. 행시에 합격하여 1994년 [[법제처]] 사무관으로 근무하였으나 특이하게도 [[1997]]년부터 일반적인 [[경찰공무원]]이 아닌 [[해양경찰]]으로 공직을 옮긴다. 이후 [[해양경찰청]]에서 근무하며 법무계장, 국제협력계장 등을 맡가다 [[총경]]으로 승진하여 기획과장, 국제과장, 완도해양경찰서장, 재정기획담당관, 국제협력담당관, 전략사업과장 등을 거친다. 2008년부터는 [[경무관]]으로 승진하여 해양경찰청 장비기술국장, 경비구난국장을 맡았다. 2010년부터는 [[치안감]]으로 승진하여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 해양경찰청 기획조정관을 맡았다. 2012년에는 해양경찰에 딱 하나밖에 없는 [[치안정감]] 보직인 해양경찰청 차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는 2013년 3월까지 재임하였다. 2013년 3월부터는 박근혜 정부가 [[해양경찰청장]]에 발탁하면서 [[치안총감]]으로 영전하였다. [[권동옥]] 청장에 이은 역대 두 번째 내부승진으로 파격적인 인사라는 평을 들었다. 해경 출신 해경청장이 나오면서 해경 조직 내부의 사기또한 충만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호]]가 침몰하고 해경이 구조 상황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해양경찰이 해체되게 되었고 해경청장이던 김 청장도 사표를 내게 되었다. 세월호 사건이후 발조된 특위에서 사고후 여러 조치상황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였으나 당시 여러 관련자들과 마찬가지로 무혐의로 결론을 내렸다. 박근혜 구속 후 다시 시작된 특별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사건당시 팽목항에 방문하여 현장지휘 후 헬기를 이용하여 원청으로 복귀하였는데 이 헬기가 익수자 긴급이송을 위해 응급호출됐었던 응급구조헬기란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발생했다. 세월호 희생자인 A 학생은 참사 당일 오후 5시 24분에 발견됐다. A 학생은 오후 5시 30분께 해경 3009함으로 올려졌으며, 35분 원격 의료시스템이 가동됐다. 당시 영상을 보면 해경 응급구조사는 A 학생을 '환자'로 호칭하며 응급처치를 했다. 바이탈사인 모니터에는 당시 A 학생의 산소포화도 수치가 69%였으며 불규칙하지만 맥박도 잡혔다. A 학생의 모니터를 함께 지켜보던 응급센터 의사는 CPR(심폐소생술)을 지속하면서 병원으로 응급 이송하라고 지시한다. 위원회 박병우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국장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산소포화도가 69%라는 것은 긴급한 치료가 필요하며 100% 사망이라고 판정할 수 없는 상태"라며 "A학생은 헬기로 병원에 이송됐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위원회 조사 결과 당시 A 학생이 3009함에 올라와 있던 오후 5시 40분께 해경의 B515헬기가 3009함에 내렸다. 그러나 이 헬기는 오후 5시 44분께 A 학생이 아닌 김수현 당시 서해청장을 태우고 돌아간다. 또 오후 6시 35분에도 B517헬기가 착함했지만, 오후 7시께 김석균 해경청장을 태우고 돌아간 박 국장은 "당시 영상을 보면 오후 6시 35분께 '익수자 P정으로 갑니다'는 방송이 나온다"며 "세월호 참사 당시 P정은 시신을 옮겨오던 배"라고 설명했다. 결국 A 학생은 오후 6시40분 3009함에서 P22정으로 옮겨졌고 오후 7시 P112정으로, 오후 7시 30분 P39정으로 옮겨진 뒤 오후 8시 50분 서망항에 도달했고, 오후 10시 5분에야 병원에 도착했다. 헬기를 타고 병원에 갔다면 20여 분이면 걸렸을 것을 4시간 41분 만에 병원에 도착한 것이다. 박 국장은 "A 학생의 경우 원격 의료시스템을 통해 의사로부터 이송조치를 지시받은 상태인 만큼 헬기 이송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4111107001&code=940100&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top&C|A 학생의 어머니는 세월호 6주기를 앞둔 현재도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2020년 세월호 특별수사단이 재가동됨에 따라 공판을 준비 중임 김석균 측에서 과실에 대해 과실혐의는 없고 과실치사는 과하다며 자신들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리고 1심에서 구조에 정답이 있을 순 없다는 주장이 인용되어 무죄를 선고 받았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596085|#]] [[분류:하동군 출신 인물]][[분류:1965년 출생]][[분류:해양경찰청장]][[분류:경찰공무원]] [[분류:한양대학교 출신]] [[분류:피고인]] [[분류:5급 공개경쟁채용시험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