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f01e23><tablebgcolor=#f01e23> '''{{{#fff 김상진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 ||<bgcolor=#fff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2>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 ||<bgcolor=#f01e23> '''[[1996년 한국시리즈|{{{#ffffff 1996}}}]]''' ||<bgcolor=#f01e23> '''[[1997년 한국시리즈|{{{#ffffff 1997}}}]]''' || ---- ||<-5><bgcolor=#f01e23> '''[[해태 타이거즈|{{{#fff 해태 타이거즈}}}]] {{{#fff 등번호 11번}}}''' || || [[김성한]](1982~1995) || → || '''김상진(1996~1999)''' || → || [[이대진]](2000~2004) || }}} || ---- ||<-2><tablebgcolor=#ffffff,#1f2023><:><tablealign=center>{{{#!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blogimg.ohmynews.com/1057676538.jpg]]}}}|| || '''이름''' || 김상진 (金相眞 / Sang-Jin Kim) || || '''출생''' || [[1977년]] [[4월 26일]][* [[음력]] [[3월 9일]]] || || '''사망''' || [[1999년]] [[6월 10일]] (향년 22세) || || '''출신지''' || [[광주광역시]] [[북구(광주)|북구]] 신안동 재뫼마을[* 당시 [[전라남도]] [[광주광역시|광주시]] [[서구(광주)|서구]] 신안동] || || '''학력''' || 광주서림초[* 용봉초등학교에서 전학]-진흥중-[[진흥고등학교 야구부|진흥고]] || || '''체격''' || 178cm, 75kg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 입단''' || [[한국프로야구/1996년/신인드래프트|1996년 고졸우선지명]] ([[해태 타이거즈|해태]]) || || '''소속 팀''' || '''[[해태 타이거즈]] (1996~1999)''' || [목차] == 소개 == 前 [[해태 타이거즈]] 소속의 [[투수]]. == 선수 경력 == === 아마추어 시절 === 용봉초등학교 5학년 때 선수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던 서림초등학교 김영기 감독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서 내성적이고 숫기없는 성격이었던 김상진은 "야구로 성공하면 [[선동열]]처럼 돈도 벌고 유명해진다"라는 감독의 말에 혹하여 곧바로 서림초등학교로 전학하여 본격적으로 [[야구]]에 발을 들였다. 처음엔 소심한 태도로 일관하며 어쩔 수 없이 [[야구]]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진흥중학교 진학 이후 강의원 감독[* 제자 [[김진우(1983)|김진우]]의 활약에 힘입어 팀을 [[2000년]] 봉황대기와 [[2001년]] 대통령배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감독에서 물러나 [[진흥고등학교 야구부|진흥고]] 체육 교사로 근무했다. 아들 [[강하승]]도 진흥고를 졸업하고 [[고양 원더스]]에 입단 후, [[KIA 타이거즈]]로 스카우트 되었지만 1시즌 후 방출되었다.]의 지도 하에 실력이 급성장했다. 강 감독은 나중에 김상진이 [[진흥고등학교 야구부|진흥고]]로 진학하는 시기에 맞춰 [[진흥고등학교 야구부|진흥고]]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며 6년간 사제지간으로 같이 야구를 했다. 러닝 위주의 훈련으로 [[박찬호]]에 버금가는 단단한 하체의 소유자가 되었고 [[고등학교|고교]]선수라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컴퓨터급 제구를 선보이며 [[야구인]]들의 주목을 끌게 된다. 당시 [[1995년]] 고교 전국 대회에서 '''[[평균자책점]] 0.86을 달성'''했고, [[커브]], [[슬라이더]], [[직구]] 평가가 상당히 좋았으며, '''최고 구속은 145km/h까지 찍었다.''' 지금이야 140km/h는 기본이라 생각되는 경우도 많은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고등학교|고교]][[야구]]라는 점이다.''' 현재 [[고등학교|고교]][[야구]]에서도 140 이상을 던지는 선수는 흔치 않다. 거기다 당시 [[KBO 리그|KBO]] 평균구속이 130 언저리에서 140대 초반이였던 걸 생각하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 프로 시절 === > '''아버지 어머니가 편히 살 수만 있다면 뭐든 해야죠. 야구가 내 직업이잖아요. 야구말고는 살 길이 없어요.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에 놀 시간이 어디 있어요.''' > - 1996년 8월 19일 [[경향신문]] 인터뷰 中 > '''명문 해태의 10승대 투수로 태어나 선배들이 일군 업적을 이어가겠다.''' > - 입단 당시 첫 훈련때의 출사표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thumbnail.egloos.net/b0049950_48c532f4d0da9.jpg]]}}}|| ||<:>1996 시즌 입단 동기들과 함께[* 당시 해태의 고졸우선지명을 받은 선수가 2명이 더 있는데, [[김상훈(1977)|김상훈]]은 고려대에 진학한 후 2000년에 입단했고, [[서재응]]은 인하대에 진학했다가 중퇴 후 [[뉴욕 메츠]]와 계약하며 미국으로 건너갔다. [[김종국(야구선수)|김종국]]은 1973년생이나 고려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프로에 데뷔해서 입단 동기가 되었다.]|| [[연세대학교 야구부|연세대]] 진학이 유력했지만 1996년 [[해태 타이거즈]]가 계약금 1억원을 제시하자 곧바로 프로로 선회했다. 가난한 집안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외환위기]] 직전 모기업 상황이 악화되던 상황에서 해태가 제시한 1억은 다른 구단의 2~3억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1996년 데뷔 시즌부터 선발진에 합류하여 5월 2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7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프로 첫 승을 따냈고, 데뷔 첫 해에 9승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해 신인왕을 노려볼 만 했지만 [[현대 유니콘스]]의 괴물 신인 [[박재홍(야구)|박재홍]]이 사상 최초의 [[30-30 클럽]]에 가입하는 등 맹활약 하면서 신인왕 경쟁에선 밀렸다. 1997년에도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하며 아쉽게 10승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147이닝을 던지면서 9승 10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60, WAR 3.25를 기록하여 시즌 내내 해태 선발진의 듬직한 버팀목이 되었으며, [[LG 트윈스]]와 맞붙은 [[1997년 한국시리즈|그 해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완투승을 기록, 팀의 9번째 우승과 함께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 기록을 세웠다. 해태팬들은 새로운 에이스급 투수의 출현에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김상진이 해태라는 이름의 마지막 [[헹가래 투수]]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해태가 9번째 우승을 거두고 정확히 1주일 후에 모기업 [[해태제과]]가 부도로 쓰러지고 말았다. == 위암 투병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sports/2009/baseball/expert_contents/pdh/ec_content/expert_346/1244794036_file_image_1.jpg]]}}}|| ||<:>투병 중이던 김상진|| 1998년 시즌 내내 지난 해에 비해 다소 떨어진 구위를 보이며 121이닝에 평균자책 3.87, 6승을 기록하는 데에 그쳤고, 그 해 9월 1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OB 베어스]]와의 시즌 마지막 선발 등판에서 목 통증을 호소하며 조기 강판했다. 그 당시 팀이나 주변이나 단순한 목 부상으로 알고 좀 쉬면 나아지려니 했지만, 시즌 종료 후 광주 시내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다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전남대학교병원]]에 입원하여 목뼈에서 발견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뭔가 심상치 않다는 의료진의 판단으로 정밀 조직검사를 실시한 결과, '''청천벽력 같은 [[위암]] 4기 판정'''이었다. 목뼈의 종양도 위에서 전이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선수가 이렇게 병이 악화되는 동안 구단에선 무엇을 했느냐며 팬들은 해태를 맹렬히 비난했지만, 사실 해태는 매년 선수들의 정기 건강검진을 실시했고 김상진 또한 [[내시경]]까지 받는 등 받을 검진은 다 받았다. 단지 '''암의 발원지가 [[내시경]]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위벽 바깥'''이었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던 것. 위벽 바깥에 암이 생기는 것은 2021년 현재까지도 내시경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며, 초기에는 '''MRI로도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애초에 미리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평소 먹성이 좋았던 김상진은 자신이 [[위암]]이란 사실을 알기 전까지 변함없이 먹는 것을 즐겼다. [[진흥고등학교]] 시절 학교 숙소에서 야식으로 [[라면]]을 즐겨 먹었는데, 큰 냄비 하나 가득 끓인 뜨거운 라면을 제대로 불지도 않고 거의 흡입하는 수준으로 먹어치울 정도로 식성이 좋았다.[* 운동선수들은 다른 직업군보다 활동량이 많은 만큼 체력 소모가 크고 [[신진대사]]가 활발하며, 이 때문에 음식 섭취량도 많은 편이다. 즉 '''냄비 하나=봉지 하나'''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 게다가 양도 많은데 갓 조리되어서 뜨겁기까지 하다면 내장에 가해지는 부담도 그 양과 온도만큼 크다.] 또한 자신이 위암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엔 형처럼 따르던 구단 트레이너 김준재[* KIA로 바뀐 이후에도 지금까지 계속 구단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와 병원 부근 용산시장에 바람을 쐬러 가서 "형님, 저 [[순대]] 먹고 싶어요." 라고 졸라서 사준 순대 1접시를 뚝딱 비우기도 했고, 팀 선배인 [[홍현우]]가 [[빵]]을 사들고 문병을 오자 큼지막한 빵을 순식간에 먹어치워 "아가야 천천히 먹어라 체하겄다."라고 다독이면서 목이 메어 혼났다고 후일 [[박동희(기자)|박동희]] 기자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홍현우는 문병 당시 김상진의 위암 투병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를 기억하는 김상진의 친구들은 그 왕성한 식성 때문에 암에 걸린 걸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한때 위암으로 투병했던 [[정현욱(1977)|정현욱]] 또한 소싯적에 대단한 먹성을 자랑했는지라[* 피자 L사이즈 2판을 그 자리에서 다 먹었다고 한다.] 폭식하는 식성이 암 발병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후 중앙대 용산병원으로 옮겨져 기약없는 투병 생활에 들어간 김상진은 1999년 초까지는 상태가 호전되는 듯 했으나, 1999년 3월 종양에 의한 위벽천공으로 봉합수술을 받은 후 병세가 악화되었고 결국 회복하지 못한 채 그 해 6월 10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22세. 죽기 전 부모님께 남긴 편지에 의하면 한국시리즈에서 완투승을 거둘 당시 '''이미 암에 걸린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니 손을 쓰려고 해도 한참 늦은 셈이다. 그가 먼 길을 떠나기 얼마 전, 김준재 트레이너에게 [[63빌딩]]에 가고 싶다고 간청해 휠체어에 탄 채 전망대에 올라갔고, 어딘가를 멍히 주시하고 있던 김상진에게 김준재가 어디를 보고 있냐고 묻자 김상진은 손가락으로 [[잠실 야구장]]을 가리키며 '''"형님, 저곳이 제가 한국시리즈 완투승을 거뒀던 곳이죠...?" 라며 울먹이며 되물었다고 한다.''' 임종 직전까지도 그가 얼마나 선수생활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그의 투병 과정은 1999년 4월 28일 방영된 KBS2 《영상기록 병원 24시》'희망은 힘이 세다' 편에서 다뤄졌다. === 투병일지 === * 1998년 9월 19일: 잠실 OB전서 2회말 투구 중 뒷목 통증을 호소하며 자진 강판 * 1998년 10월 8일: 광주 시내에서 친구들과 저녁식사 도중 후두부 통증과 토혈 증세를 보여 [[전남대학교병원]]에 입원 * 1998년 10월 16일: 경추 3번 종양 제거 수술 * 1998년 10월 23일: 전남대학교병원에서 위암 4기 진단 * 1998년 10월 26일: 중앙대학교 부속 용산병원 입원, 재검 결과 전남대학교병원과 동일 진단 * 1998년 10월 30일: 방사선 치료를 위해 서울중앙병원 입원. 통원치료 받으며 4주 간격으로 항암제 투여 * 1999년 3월 6일: 토혈 발생, 서울중앙병원 입원. 암세포로 인한 위벽 천공이 원인인 것으로 판명 * 1999년 3월 8일: 위벽 봉합수술 실시 * 1999년 6월 2일: 병세 악화,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의식 불명에 빠지며 산소호흡기로 연명 * 1999년 6월 10일 15시 55분: 강남성모병원에서 [[위암]]으로 운명 (향년 22세) == 사후 == * 김상진이 타계하기 6년 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츠다 츠네미]]가 연상되는 비운의 투수.[* 김상진과 츠다는 팀에서 촉망받던 우완 파이어볼러였고, 암으로 인해 안타깝게 사망한 공통점이 있다.] 또한 그가 사망한 이듬해인 2000년엔 같은 [[투수]]였던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후지이 마사오]]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이쪽도 똑같이 암으로 사망했고, 챔피언십 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으며(한국/일본 시리즈), 강속구 투수를 상징하는 불과 관련된(후지이의 경우는 "'''불꽃'''의 중간계투") 별명이 붙었었다.] * [[동아일보|모 신문사]]에서 그의 죽음을 전하는 기사의 제목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61100209137013&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9-06-11&officeId=00020&pageNo=37&printNo=24219&publishType=00010|김상진]] [[고인드립|인생 마운드 강판]]' 이라고 적어놔서 '아니 젊은 청년이 불의의 병으로 죽었는데 거기다가 안 좋은 의미의 '강판'이라고 제목을 적다니 너무한거 아니냐?' 라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그 다음주 해당 신문사에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61700209107006&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9-06-17&officeId=00020&pageNo=7&printNo=24224&publishType=00010|그건 아니지 않냐]]' 라는 독자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도 당시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한참 후에 '자기는 그런 제목을 붙이지 않았는데 편집부에서 맘대로 붙인 제목이었다' 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당시엔 기사는 기자가 쓰지만 편집부나 데스크에서 그 기사를 마음대로 편집하거나 제목을 붙이는게 일반적이었다.] [[파일:external/nimg.nate.com/201001110944046083.jpg]] * 김상진이 세상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도 [[KIA 타이거즈]]는 김상진의 기일인 6월 10일에 근조 리본을 달고 경기에 임하고 있으며, 2000년에 생긴 김상진의 팬클럽인 '''"천상비애(天上飛愛)"'''[* 한때 회원수가 수백명에 달했으나 지금은 십수명의 소규모로 축소되었다.]도 매년 기일마다 아래 사진과 같이 야구 현수막을 걸고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http://cafe.daum.net/sangjin11|예전보다는 회원 수가 줄고 활동이 뜸해졌지만, 김상진 선수에 대한 사진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카페이니 김상진 선수를 기리는 마음으로 둘러보는걸 추천한다.]] [[http://cafe.daum.net/sangjin11/1rgN/53|2002 시즌 중 장성호가 김상진을 추억하며 글을 남기기도 했다.]] * [[OB 베어스]]에서 에이스로 활약한 동명이인 [[김상진(1970)|김상진]]과 두 번 맞대결해서 모두 이겼다. * [[http://blog.naver.com/dhp1225/120070029417|박동희 기자의 김상진 칼럼 - '天上飛愛' 해태 투수 고 김상진]][* 네이버 스포츠로 발행된 컬럼이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네이버에서는 삭제되고 박동희 기자 블로그에 원문이 남아있다.]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295&aid=0000000316|박동희의 베이스볼포엠 - 고 김상진의 비디오테이프]][* [[KIA 타이거즈]]의 2009년 10번째 우승 후 박동희 기자의 컬럼. 김상진 선수가 V9의 마지막 승리투수라는 점에서 위의 컬럼과 함께 보길 추천.] 참고영상 [[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uCategory=kbaseball&category=kbo&listType=game&date=20110610&gameId=&teamCode=&playerId=&keyword=&id=2003&page=2|1]], [[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uCategory=kbaseball&category=kbo&listType=game&date=20090610&gameId=20090610HTWO0&teamCode=&playerId=&keyword=&id=12156&page=1|2]], [[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uCategory=kbaseball&category=kbo&listType=game&date=20150610&gameId=20150610WOHT0&teamCode=&playerId=&keyword=&id=132430&page=1|3]] * 2013년 9월 10일, [[임창용]]이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임창용]]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리포트"라는 칼럼에서 김상진 선수를 추모하는 내용의 칼럼을 쓰면서 팬들이 이 비운의 선수를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임창용이 김상진의 진흥고 1년 선배이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baseball&ctg=issue&mod=read&issue_id=633&issue_item_id=8632&office_id=064&article_id=0000003844|임창용 칼럼]] * 2016년 10월 김상진의 출생지인 재뫼마을의 환경개선사업의 일환으로 김상진을 기억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http://www.gwangnam.co.kr/read.php3?aid=1479118652246457023|기사]] === 김상진의 저주? === 생전의 그를 끔찍이도 아꼈던 진흥고 직속 선배 [[이대진]]은 김상진이 세상을 떠난 후 잊지 않겠다는 뜻에서 한동안 등번호 11번을 달고 경기에 임했지만, 2004 시즌을 끝으로 스스로 번호를 반납해버렸다. 이유인 즉 자신의 성적이 너무 부진해서 하늘에 있는 후배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대진 역시 어깨 수술을 받고 타자 전향까지 하는 등 부진한 상황이었다. 이대진이 11번을 반납한 이후, 2011년 시즌 [[손영민]]이 11번을 물려받기로 했었는데, [[이범호]]의 FA 영입 보상선수로 [[한화 이글스|친정 팀]]에 돌아간 [[안영명]]의 등번호이던 1번을 달면서 결번으로 남아 있다가 2010년도 신인 [[투수]]인 [[김대웅]]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2011년 시즌 종료 후 김대웅이 방출되며 다시 결번이 되었다가 2012년 부터는 좌완 투수 [[임준섭]]이 달았고, 이후 임준섭이 [[한화 이글스|한화]]로 트레이드 되면서 반대급부로 KIA 유니폼을 입은 [[김광수(1981)|김광수]]가 11번을 달았다. 2016년에는 [[유창식]]이 물려받았지만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등번호를 더럽히는 초대형 사고]]를 쳤다. 이 말종은 [[한화 이글스]]에서도 [[구대성|레전드]]의 [[15|번호]]를 더럽혔다. 뒤이어 진흥고 후배 [[김진우(1983)|김진우]]가 11번을 받았지만 그도 [[영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2017년 시즌 후 육성선수 전환과 함께 반납하고 말았다. 이렇듯 한 때 해태의 강타자 [[김성한]]의 등번호이기도 했던 김상진의 생전 등번호 11번은 2018년 결번으로 남아 있다가 2019년에 [[박정수(야구선수)|박정수]], 2020년에 [[이민우(야구선수)|이민우]]의 배번으로 정해지는 등 여러 모로 곡절을 겪고 있다. 2020년 시즌에는 [[이민우(야구선수)|이민우]]가 이 번호를 달았고 시즌 초엔 호투했으나 이후엔 부진하면서 선발 로테이션에서 아예 빠져버렸다. === 기일에 열렸던 [[KIA 타이거즈|타이거즈]] 경기의 기록 === '''1999년 6월 10일 그가 하늘나라로 떠난 바로 그 날''', [[수원 야구장]]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조의를 표하는 검은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고, [[소소경]]의 7이닝 4피안타 2실점의 호투, 그리고 입단 동기 [[장성호]]의 역전 타점과 쐐기 점수에 힘입어 10:2로 크게 '''승리'''했다. 매년 6월 10일이면 근조 리본을 부착하고 경기에 임하는 타이거즈이지만, 이 날 KIA의 승률은 0에 가깝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7경기 연속으로 패배하다가[* [[2013년]]은 [[6월 10일]]이 [[월요일]]이라 경기가 없었다.] 2016년에 한 번 이겼다. [[삼성 라이온즈|삼성]]이 고 [[장효조]] 선수 [[기일]]에 여는 추모경기와 딱 비교된다.[* 장효조의 작고 후 삼성은 장효조의 기일이나 추모행사가 있는 경기에서 무패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나 2011년부터 삼성을 맡은 [[류중일]] 감독이 장효조와 함께 꽤 오래 선수생활을 하였으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던 직속 후배여서 더더욱 이기려고 하는걸지도..] [[KIA 타이거즈/2014년/6월/10일|2014년 6월 10일 경기]]에서는 난타 세례를 받으며 팬들을 폭발시켰다. 그렇잖아도 [[타어강]] 등 2013년 이후 처참한 성적으로 분위기가 살벌한 기아 팬들이었는데 이런 막장 경기까지 나오니 '''김상진 기일만 되면 지던 놈들이 이젠 아주 가지가지 한다'''며 분노어린 반응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2015년]]에도 또 졌다. 이번엔 [[양현종]]의 등판 경기라서 많은 팬들이 승리를 기대했지만, 라인업에서 [[김기태(1969)|김기태]] 감독이 '''[[나지완]]을 좌익수 겸 1번타자'''로 기용하는 이상한 수를 뒀고, 결국 마무리 [[윤석민(투수)|윤석민]]이 1.1이닝 2실점 불쇼를 보여주며 [[넥센 히어로즈]]에게 역전패했다. [[2016년]]에는 드디어 이겼다.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광주]] 홈 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이범호]]와 [[브렛 필]]의 홈런포를 앞세워 4-0의 스코어로 경기를 끝냈으며, 고졸 신인 [[정동현]]이 '''1군 데뷔 첫 선발승'''까지 거두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승전보로 김상진을 추모할 수 있었다. 2017년에는 다시 졌다. 광주 홈 경기에서 넥센에게 연패를 하며 당시 시점에서 NC와 불과 0.5경기차 1위라는 살얼음판을 걷게 됐다. 2018년에는 롯데 원정 경기였는데 4:0으로 끌려가다가 우천으로 노게임 선언이 되었다. 20주기인 2019년 6월 10일은 [[월요일]]이라 경기가 없었다. 21주기인 2020년 6월 10일은 [[kt wiz|kt 위즈]]와의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수원]] 원정 경기였고, 이른 장마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KIA는 10:0으로 5회 강우콜드 승리를 거두었다. 김상진의 기일에 거둔 네 번째 승리였다. 이날 경기는 7안타를 치고도 kt 마운드의 난조로 무려 '''10개'''의 사사구를 얻어 대량 득점에 성공했고, [[애런 브룩스]]가 5이닝 무실점의 맹투로 완봉승을 거두는 등 여러모로 뜻깊은 날이었다. ~~[[조선일보|어느 칼럼]]에선 김상진이 울어줘서 편하게 이기게 해줬다고 했다.~~ 22주기인 2021년 6월 10일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대구]] 원정 경기로 예정되어 있다.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c70125><rowbgcolor=#c70125> '''{{{#ffffff 연도}}}''' || '''{{{#ffffff 주기}}}''' || '''{{{#ffffff 상대팀}}}''' || '''{{{#ffffff 구장}}}''' || '''{{{#ffffff 스코어}}}''' || '''{{{#ffffff 승패}}}''' || '''{{{#ffffff 비고}}}''' || || 2000 || 1 || [[두산 베어스|두산]]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 5:4 || '''{{{#0000ff,#0000ff 승}}}''' || || || 2001 || 2 || [[현대 유니콘스|현대]] ||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수원]] || 0:6 || '''{{{#ff0000,#ff0000 패}}}''' || || || 2002 || 3 ||<-4> 경기 없음 || [*A 월요일이기 때문에 경기가 없다.] || || 2003 || 4 || [[한화 이글스|한화]] || [[무등 야구장|무등]] || 17:8 || '''{{{#ff0000,#ff0000 패}}}''' || || || 2004 || 5 || [[삼성 라이온즈|삼성]]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시민]] || 3:1 || '''{{{#0000ff,#0000ff 승}}}''' || || || 2005 || 6 || [[두산 베어스|두산]]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 2:5 || '''{{{#ff0000,#ff0000 패}}}''' || || || 2006 || 7 ||<-4> 경기 없음 || || || 2007 || 8 || [[SK 와이번스|SK]] || [[무등 야구장|무등]] || 2:3 || '''{{{#0000ff,#0000ff 승}}}''' || || || 2008 || 9 || [[우리 히어로즈|우리]] || [[목동 야구장|목동]] || 2:10 || '''{{{#ff0000,#ff0000 패}}}''' || || || 2009 || 10 || [[서울 히어로즈|히어로즈]] || [[목동 야구장|목동]] || 2:4 || '''{{{#ff0000,#ff0000 패}}}''' || || || 2010 || 11 || [[두산 베어스|두산]] || [[무등 야구장|무등]] || 3:1 || '''{{{#ff0000,#ff0000 패}}}''' || || || 2011 || 12 || [[LG 트윈스|LG]] || [[월명 야구장|군산]] || 7:6 || '''{{{#ff0000,#ff0000 패}}}''' || || || 2012 || 13 || [[롯데 자이언츠|롯데]] || [[사직 야구장|사직]] || 3:6 || '''{{{#ff0000,#ff0000 패}}}''' || || || 2013 || 14 ||<-4> 경기 없음 || [*A 월요일이기 때문에 경기가 없다.] || || 2014 || 15 || [[한화 이글스|한화]] ||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광주]] || 16:15 || '''{{{#ff0000,#ff0000 패}}}''' || || || 2015 || 16 || [[넥센 히어로즈|넥센]] ||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광주]] || 4:3 || '''{{{#ff0000,#ff0000 패}}}''' || || || 2016 || 17 || [[삼성 라이온즈|삼성]] ||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광주]] || 0:4 || '''{{{#0000ff,#0000ff 승}}}''' || || || 2017 || 18 || [[넥센 히어로즈|넥센]] ||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광주]] || 8:4 || '''{{{#ff0000,#ff0000 패}}}''' || || || 2018 || 19 || [[롯데 자이언츠|롯데]] || [[사직 야구장|사직]] || || '''취소''' || [* 4회말 우천 노게임] || || 2019 || 20 ||<-4> 경기 없음 || [*A 월요일이기 때문에 경기가 없다.] || || 2020 || 21 || [[kt wiz|kt]] ||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수원]] || 10:0 || '''{{{#0000ff,#0000ff 승}}}''' || [* 강우 콜드로 5회까지만 진행] || || 2021 || 22 || [[삼성 라이온즈|삼성]] ||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대구]] || || || || 아래는 팀 간 전적이다.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c70125><rowbgcolor=#c70125> '''{{{#ffffff 팀}}}''' || '''{{{#ffffff 전적}}}''' || '''{{{#ffffff 승률}}}''' || || [[삼성 라이온즈|삼성]] || 2승 ||<|2> 1.000 || || [[SK 와이번스|SK]], [[kt wiz|kt]] || 1승 || || [[두산 베어스|두산]] || 1승 2패 || .333 || || [[롯데 자이언츠|롯데]], [[LG 트윈스|LG]], [[현대 유니콘스|현대]] || 1패 ||<|4> .000 || || [[한화 이글스|한화]] || 2패 || || [[키움 히어로즈|키움]](전신팀 포함) || 4패 || || [[NC 다이노스|NC]] || 전적없음 || || 통산 전적 || 5승 12패 || .313 || == 연도별 주요 성적 == ||<-14><table align=center><bgcolor=#000000> {{{#ffffff 역대 기록}}} || ||<rowbgcolor=#f01e23> {{{#ffff00 연도}}} || {{{#ffff00 소속팀}}} || {{{#ffff00 경기수}}} || {{{#ffff00 이닝}}} || {{{#ffff00 승}}} || {{{#ffff00 패}}} || {{{#ffff00 세}}} || {{{#ffff00 ERA}}} || {{{#ffff00 피안타}}} || {{{#ffff00 실점}}} || {{{#ffff00 자책점}}} || {{{#ffff00 사사구}}} || {{{#ffff00 탈삼진}}} || {{{#ffff00 WHIP}}} || || 1996 ||<|3> [[해태 타이거즈|해태]] || 29 || 123⅔ || 9 || 5 || 0 || 4.29 || 115 || 62 || 59 || 55 || 64 || 1.35 || || 1997 || 30 || 147⅔ || 9 || 10 || 1 || 3.60 || 135 || 60 || 59 || 71 || 91 || 1.28 || || 1998 || 25 || 121 || 6 || 11 || 1 || 3.87 || 120 || 63 || 52 || 50 || 69 || 1.34 || ||<-2><bgcolor=#ffff88><color=#373a3c> '''[[KBO 리그|KBO]] 통산''' [br] (3시즌) ||<rowbgcolor=#ffffff,#191919> 84 || 392⅓ || 24 || 26 || 2 || 3.90 || 370 || 185 || 170 || 176 || 224 || 1.32 ||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상진, version=96)]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ㄱ]][[분류:북구(광주) 출신 인물]][[분류:1977년 출생]][[분류:1996년 데뷔]][[분류:1999년 사망]][[분류:투수]][[분류:우완 투수]][[분류:우투우타]][[분류:위암으로 죽은 인물]][[분류:해태-KIA 타이거즈 은퇴/이적]][[분류:광주진흥고등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