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서인)] [Include(틀:노론)] [목차] [clearfix] == 개요 == 김만기(1633~1687)는 조선 숙종 때 문신이며, 외척이다. 본관은 광산, 자는 영숙, 호는 서석, 정관재, 시호는 문충이며 봉작은 광성부원군이다. == 인간 관계 == 숙종의 첫 번째 장인이고, 인경왕후의 아버지였다. [[김집]]의 종증손자이다. 그리고 증조부는 예학의 대가인 사계 [[김장생]]이며, 조부는 허주 [[김반]]이고[* 잠곡 [[김육]]의 절친이다.] 아버지는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익겸]]이다. 창주 [[김익희]]의 조카이다. 북헌 [[김춘택]]의 조부이기도 하며[* 첫째 아들 [[김진구]]의 아들이다.],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으로 유명한 서포 [[김만중]]의 형이다. 또한 공작정치로 유명한 식암 [[김석주]]하고도 친인척 관계를 형성했다.[* [[김석주]]는 [[김육]]의 손자이기도 하다.] 우암 [[송시열]]의 문인이고 광남 [[김익훈]]의 조카이기도 했다. == 사상 == 골수 서인이었으며, 또한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한 뒤에는 골수 노론이기도 했다. 또 [[민유중]][* 둔촌 민유중도 송시열의 문인이자 숙종의 두 번째 장인이다.], [[김석주]] 등과 함께 삼척으로도 불렸다. == 정치 생활 == 송시열의 문인이며, [[예송 논쟁|기해예송]]과 [[예송 논쟁|갑인예송]]에서 송시열의 뜻을 따르면서 서인의 과격파로서 남인의 의견에 강하게 맞섰다. 그의 딸이 세자빈이 된 뒤에는 병조참판과 예조참판을 지냈고 병조판서와 예조판서, 그리고 대제학을 지냈으며 숙종 즉위 이후 국구가 되면서 영돈녕부사로 임명되었고 훈련대장, 호위대장, 오위도총부도총관으로 군권까지 쥐었다. 경신환국 때 서인으로써 김석주, 김익훈, 이사명 등과 더불어서 옥사를 일으켜서 남인들을 많이 숙청했다. [[분류:조선/인물]][[분류:광산 김씨]][[분류:서인]][[분류:노론]][[분류:1633년 출생]][[분류:168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