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rokps.or.kr/487.jpg|width=150]] [[1912년]] [[11월 20일]] ~ [[1985년]] [[11월 10일]] 金斗珍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김해 김씨|김해]](金海). 1912년 [[전라남도]] 제주군 중면 두모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 가수 [[진시몬]]도 이 마을 출신이다.][[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37314|#]]에서 김남룡(金南龍)의 아들로 태어났다. 제주공립농업학교(현 제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는데, 졸업 직후 동기생들과 함께 평소 한국 학생에게 민족적 차별을 일삼던 일본인 교장 스기사키(杉崎勝藏)의 배척 운동을 전개했다. 이 일로 일경에 체포된 그는 1932년 3월 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기좌, 제주농회 기수, [[미군정]]청 농무부 기사, 한국면업협회 [[전무이사]], 삼광기업(주) [[사장]], 주식회사 일광염업개발공사 [[상무이사]], 덕풍물산주식회사 취체역 [[회장]] 등을 지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제주도(현 제주특별자치도) 북제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선 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제주도 북제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1955년)|민주당]] 홍문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당]]에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탈락하였다. 이에 해당 선거에서 [[자유민주당(대한민국)|자유민주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 제13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제주도 [[제주시]]-북제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양정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분류:1912년 출생]][[분류:1985년 사망]][[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김해 김씨]][[분류:제3대 국회의원]][[분류:제4대 국회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