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생년 미상]][[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애국장]] ||<-2><tablealign=right><tablewidth=410><tablebordercolor=#0047a0><tablebgcolor=#fff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김동구}}}[br]金東九'''}}}}}} || ||<|2><width=80><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생년 미상 || ||출생지 미상 || ||<|2><color=#fff> '''사망'''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김동구는 1909년경 김막동(金莫同)·김상천(金祥千)·[[박치근(1888)|박치근]]·한자선(韓子先)·박화숙(朴化淑)·[[최석봉]] 등과 더불어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대일 항전과 군자금 수합 활동을 벌였다. 그는 1909년 4월 22일 의병부대를 이끌고 전북 옥구군 성남(城南)면 유촌(柳村)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발하였다. 같은 해 6월 7일에도 김막동·김상천 등 2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북 남원군 아산방(亞山坊) 석문동(石門洞)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고, 같은 달 신정리(新亭里)에서도 군자금을 거두었다. 그리고 같은 달 임실군 덕치면(德峙面) 원촌리(遠村里) 이장(里長) 집과 순창(淳昌)군 구미리(九味里) 이장 집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수합하였다. 이밖에도 같은 해 10월 24일 김상천과 [[박영렬]]에게 지시하여 임실군 하신덕(下新德)면 물량리(勿梁里)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수합하게 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동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