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의열단)] [[파일:의열단 단체 사진.png]]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에 남아있는 [[의열단]] 창립 초기 단원들의 사진. 오른쪽 선 사람부터 [[김원봉]], [[곽재기]], 강세우, 김기득, 이성우. 앉아 있는사람은 정이소다. 우측 하단에 따로 붙은 사진은 [[김익상]]이다. ||||<tablealign=right><tablewidth=410><tablebordercolor=#0047a0><tablebgcolor=#fff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김기득}}}[br]金奇得'''}}}}}} || ||<|2><width=80><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99년]] [[11월 9일]] || ||[[한성부]] 수표동[br](현재 [[서울특별시]] [[중구(서울)|중구]] 수표동) || ||<|2> '''사망''' ||[[1933년]] [[4월 6일]] || ||[[경성부]] || || '''직업''' ||독립운동가 || ||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김기득은 1899년 11월 9일 한성부 수표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기득(金箕得), 김태희(金泰熙), 김영환(金永煥), 백남두(白南斗), 백영호(白永鎬)이다. 그는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 지린성 동녕현 소수분에서 독립운동을 꾀했다. 이때 [[김원봉]], [[곽재기]] 등과 의기투합한 그는 상하이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의열단을 조직하고 단원으로 가입했다. 1919년 9월 상순, 곽재기와 함께 거사에 필요한 폭탄을 구입하려 했지만 여의치 못하자 다시 지린성으로 돌아와 군자금을 모금한 뒤 1920년 2월 폭탄을 구입했다. 이후 곽재기, [[황상규]], [[윤세주]], 이성우(李成宇) 등의 동지들과 함께 이낙준(李洛俊)의 집에 모여 구입한 폭탄을 국내로 반입할 방법과 군자금을 모금할 방법, 그리고 정보를 수집할 방안 등을 의논한 끝에 폭탄을 경상남도 밀양청년단장 김병환(金煥)에게 보냈다. 그 직후 동지들과 함께 서울로 잠입한 그는 비밀리에 총독부 동양척식회사·경성일보사 등의 정황을 수집하는 등 거사계획을 준비하던 중 경기도 경찰부에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소위 밀양 폭탄사건으로 7년형의 징역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경성부에서 감시를 받으며 어렵게 지내다 1933년 4월 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김기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중구(서울) 출신 인물]][[분류:의열단/단원]][[분류:1899년 출생]][[분류:1933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