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분류:의성군 출신 인물]][[분류:1905년 출생]][[분류:1977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2><tablealign=right><tablewidth=410><tablebordercolor=#0047a0><tablebgcolor=#fff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김규복}}}[br]金圭福'''}}}}}} || ||<|2><width=80><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905년]] [[4월 5일]]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면 도서리 || ||<|2><color=#fff> '''사망''' ||[[1977년]] [[3월 30일]] || ||[[경상북도]] [[의성군]] || ||<color=#fff> '''직업''' ||독립운동가 ||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김규복은 1905년 4월 5일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면 도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2년 10월 10일 [[오기수]]·[[오병수]] 등과 함께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보급하기 위해 자신의 양돈장에서 적색독서회(赤色讀書會)를 조직하였다. 이 회에는 농민부·조직부·청년부의 부서가 구성되었는데, 김규복은 농민부의 책임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독서회는 조직을 확대하기 위해 1933월 1월 친목단체로 위장한 의성노동친목계(義城勞動親睦契)를 조직하였으며, 이 조직을 기반으로 각 관공서의 소사(小使) 및 지방 근로자의 청소년에게 사회주의를 보급하며 동지들 규합해 갔다.또한 이들은 노동친목계와 같은 목적으로 의성체육회를 조직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확산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의성체육회의 활동이 미진하자, 같은 해 8월 31일 임원을 개편하였는데, 김규복은 위원에 선임되었다. 김규복은 의성체육회를 중심으로 매월 1회에 걸쳐 체육회원을 모아놓고 사상교육을 실시하면서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러던 중 김규복은 1933년 10월 6일 붙잡혀, 1년 9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의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7년 3월 3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김규복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