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동명이인/ㄱ]] [목차] == 개요 == 성씨로 [[김(성씨)|김]], 이름으로 [[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목록. == 현대 == === 실존 인물 === *[[김구]]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구(가수)|김구]] : 대한민국의 가수 *성우 [[김준(성우)|김준]]의 본명[* SNS 등지에 본명으로 등록되어있기도 하다.] === 가상 인물 === *[[김구(대가리)|김구]] - [[대가리(웹툰)|대가리]] == 현대 이전 == === 고려시대 === ==== 金坵 ==== 고려 시대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이다. 젊을 적에 제주 판관을 지낸 적이 있으며, 이 시기에 토지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많이 놓여 있는 현무암을 돌담으로 활용해 땅을 빼앗길 수도 있는 양민의 토지를 지키는 데 기여했다. === 조선시대 === ==== 金絿 ==== [include(틀:조선 4대 명필)] [[파일:external/www.enewstoday.co.kr/420661_89180_427.jpg]] 김구의 필체인 인수체. - 대전시립박물관 전시 [[1488년]] [[예산군]] ~ [[1534년]] 조선 [[중종(조선)|중종]] 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대유, 호는 자암(自庵)과 삼일재, 시호는 문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조선의 4대 명필로 손꼽힌 사람으로, 김구가 인수방에 살았으므로 김구가 쓴 필체는 '인수체'라고 불렸다. [[생원]] 시절 [[세조]] 즉위 초에 폐위된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소릉(昭陵)을 복위를 청했으나 거절당한 적이 있으며[* [[http://sillok.history.go.kr/id/kka_10712007_003|중종실록 17권, 중종 7년 12월 7일 정미 3번째기사]]], [[1513년]]에 별시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조광조]], [[김식]] 등과 함께 사림파의 주요 인물로 홍문관 부제학까지 올랐으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투옥된 뒤 개령으로 유배되고 남해, 임피 등으로 이배되었다가 [[1533년]]에 풀려났다. 이후 고향 예산에서 여생을 보내었으나 1534년, 풀려난 지 1년 만에 사망하였다. 사망한 지 4년 뒤인 [[1538년]]에 부제학 직첩을 되돌려받고[* [[http://sillok.history.go.kr/id/kka_13304012_003|중종실록 87권, 중종 33년 4월 12일 을묘 3번째기사]]] [[영조]] 시절 시호를 추증받았다.[* [[http://sillok.history.go.kr/id/kua_12209006_007|영조실록 64권, 영조 22년 9월 6일 기해 7번째기사]]] [[분류:조선 예술가]][[분류:조선의 서예가]] ==== 金構 ==== [[1649년]] ~ [[1704년]] 조선 시대 후기의 문신. 당색은 [[서인]] [[노론]]. 본관은 청풍 김씨이며 자긍(子咽), 호는 관복재(觀復齋)이고,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현종(조선)|현종]] 10년([[1669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숙종(조선)|숙종]] 8년([[1682년]])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성균관]]전적과 각 조의 낭관을 거쳐 대사간, 장예원판결사를 지냈다. 판결사로 재직 중 [[세조(조선)|세조]]에게 쫓겨난 노산군의 복위를 주장하여 단종복위를 성사시켰고 아울러 단종비 송씨의 묘를 왕비의 능으로 추봉하고 능을 조성하는 공사를 감독했다. 이후 형조판서를 거쳐 육조의 판서를 모두 지내고 숙종 29년([[1703년]]) 우의정으로 승진했다. 어머니 상을 치른 뒤 병을 앓더니 몇 개월 안돼 56세의 나이인 숙종 30년([[1704년]])에 사망하였다. 졸기를 보면 숙종이 시킨 일들을 잘 처리해서인지 머리도 좋고, 능력도 좋은 편에 말주변도 좋아 숙종이 건강을 염려할 정도로 대접이 좋았다라는 얘기가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sa_13012018_003|숙종실록 40권, 숙종 30년 12월 18일 갑신 3번째기사]] 하지만 [[소론]]이 보충한 [[숙종실록보궐정오]]에서는 임금의 총애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아첨만 잘하고 임금을 바로잡지는 못했다고 까고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sb_12912013_001|숙종실록보궐정오 38권, 숙종 29년 12월 13일 갑신 1번째기사]] 그의 집안은 4대에 걸쳐 6명의 정승을 배출한 집안이기도 하다. [[영의정]]이 된 [[김재로]]는 그의 아들이며, 좌의정에 올랐던 [[김치인]]은 김재로의 아들이자 김구의 손자며, [[정조(조선)|정조]] 때의 서인 노론의 거두 [[김종수(조선)|김종수]]는 김구의 아들 김희로의 손자, 즉 김구에게 증손자가 된다. 동생 [[김유]]는 대제학을 지냈고, 김유의 아들로는 [[사도세자]]를 공격했던 영의정 [[김상로]], [[좌의정]] [[김약로]]와 이조판서 김취로가 있다. 또한 독립운동가 [[김규식]]은 그의 동생 김무의 7대손이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EC%B6%A9%ED%97%8C%EA%B3%B5%EA%B9%80%EA%B5%AC%EB%AC%98%EC%97%AD.jpg]] 현재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공원(서울)|올림픽공원]] [[몽촌토성]] 내에 그의 무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