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대한민국의 남성 방송인/ㄱ]][[분류:1946년 출생]][[분류:2015년 사망]] [[파일:55934_48779_4228.jpg]] 김광한 (金光漢) 1946년 11월 9일 ~ 2015년 7월 9일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팝송]] [[DJ]] 겸 방송인이다. 팝송을 독학하여 1980년대 당시 [[대한민국]]에 드문 팝 전문가였다. == 생애 == 서울에서 5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며 신문배달을 하며 고학했다고 한다. 서라벌 예술대학(중앙대 연극영화과의 전신)을 졸업했다. 혼자서 미 8군에서 나오는 팝 관련 잡지를 읽으며 팝을 독학했다고 한다. 1966년 서울 FM[* 주파수는 89.1MHz. 원래는 독립적으로 탄생한 민영 FM 방송이었지만, 운영난에 부딪히면서 [[동양방송]]에 흡수되어 동양 FM 방송이 된다. 따지고 보면 현재 [[KBS 2FM]]의 조상이기도 하다.]에서 DJ로 데뷔한 그는 1년 2개월 남짓 활동한 후, [[베트남 전쟁|월남전]]에 정훈병으로 참전했다. 제대한 후에는 바로 방송에 복귀하지 않고 음악감상실의 DJ를 하다가, 1978년 [[MBC FM4U|MBC FM]]의 "박원웅과 함께" 를 통해 방송계에 복귀했다. 1980년 [[동양방송|TBC]]에 입사하여[* 애초에 그가 방송 DJ 경력을 시작한 곳이 동양 FM이었기에, 친정으로 돌아왔다고도 볼 수 있다.] "탑튠쇼'를 진행했다. 1980년대가 그의 전성기다. 이 때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의 활약으로 팝송 팬들이 [[대한민국]]에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도 팝 전문가로서 활약하게 된다. 그리하여 [[KBS 2FM]]의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 그리고 TV에서 팝송 관련 진행자를 맡기도 했다. 그는 [[이종환(방송인)|이종환]]이나 [[김기덕(DJ)|김기덕]]과 달리 라디오에만 머무르지 않고, [[유머 1번지]]나 [[쇼 비디오 쟈키]] 등의 개그 프로그램에 나와서 팝을 해설해 주기도 했다.[* 당시 유머 1번지와 쇼 비디오 쟈키에서 해외 최신 팝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해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혼자 나와 진행하거나 [[주병진]]이 같이 출연해 팝 소식과 소개하는 곡에 대해 입담을 나누기도 했다. 여담으로 [[엔야]]의 대표곡 Orinoco Flow의 뮤직비디오도 쇼 비디오 쟈키에서 소개되었다.] 팝송 전문가였을 뿐만 아니라 일반 프로그램 진행 능력도 있었기 때문에, 팝송 관련 프로에만 머무르지 않고 1990년대 초반에는 가요 프로그램인 가요톱10을 진행하기도 했다. 본인도 진행을 맡으며 "저는 가요에 전문가가 아닙니다만, 이 기회에 가요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이렇게 그는 여러가지 활약을 했지만 1992년부터 [[대한민국]]에서 모든 것을 바꿔 버린 [[서태지]]가 완전히 가요판을 새로 짜고 댄스음악이 주류가 되면서 [[대한민국]]에서 팝송의 위세는 줄어들고, 이렇게 되자 활약이 뜸해졌다. 그리하여 슬롯이 거의 없어진 팝송 전문 프로그램이 아닌, 일반 프로그램의 DJ로 방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90년대 후반에는 [[TBS|서울교통방송]]의 밤과 음악사이를 진행하기도 했고, 2000년대 초에는 [[KBS 2FM]]으로 돌아와 아침 11시에 방송했던 "골든팝스"의 진행을 맡았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는 [[경인방송]] 라디오(iFM)에서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을 진행하도 했고, 2009년부터 2011년까지는 TBN 인천교통방송 낭만이 있는 곳에를 진행하기도 했고, 2013년~2014년에는 [[CBS 표준FM]]에서 "김광한의 라디오 스타"를 진행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등 소탈함을 보이기도 했지만, [[극우]]적인 발언을 자주 하여 댓글란에서 자주 [[키배]]가 벌어지기도 했고 돌아선 팬들도 많았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 황금기를 보냈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우편향이 될 수 있겠지만, 다양한 성향의 팝송 팬들과 소통하는 부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도 있다. 2015년 7월 6일에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7월 9일에 타계했다. 향년 70세. 전술한 [[베트남 전쟁|월남전]] 참전 경력으로,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되었다. 2015년 5월에 방송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한 게 대중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인 모습이 됐다. 팝 전문가 1세대로서, 1980년대 젊은 세대에서 팝송 붐을 일으키는데 활약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세대의 한계로, 그의 팝 지식은 이종환이나 김기덕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크게 대단한 것은 아니고 오류도 많았다.[* 예를 들어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born in the usa를 애국주의 노래라고 소개하기도 했는데,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밖에도 원래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진보적인 팝 아티스트에 대한 설명도 생략하거나 잘못 해설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즉 한때 그의 해설을 들으며 팝송에 입덕하던 팬들이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고, 해외 유학으로 해외 팝 정보를 두루 접하면서, 그들의 해설이 진정한 본좌급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만 당시 제대로 된 팝송 지식이 미 8군에서 흘러나오는 잡지가 전부였던 제한된 여건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팝송 전문가 1세대로서 대한민국에 팝 문화를 정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기타 == * 방송가의 야사를 많이 알고 있던 [[김용민(1974)|김용민]]의 증언에 의하면, 방송 중 1분도 안 되는 중간 광고 시간 때 스튜디오를 나와 짬짬히 담배를 피우고 다시 칼같이 스튜디오로 들어와서 진행했다고 한다. 보는 PD들이 김광한이 시간에 못 맞춰서 방송사고가 날까봐 안절부절하지 못했다고. 당시는 실내 흡연이 가능했던 시기였기에 가능하다. * 슬하에 자녀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경인방송]] 관계자가 상주를 맡았다. * 그의 맏형은 [[6.25 전쟁]]에 참전해서, [[국립서울현충원]]에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1803100040|안장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