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본명이 김광일인 배우, rd1=남포동, other2=조선일보 논설위원, rd2=김광일(언론인))] [include(틀:역대 대통령비서실장)]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580009><bgcolor=#580009><tablebgcolor=#f5f5f5,#1f2023> [[대한민국 국회|[[파일:국회휘장(9대-19대).png|width=30]]]] {{{#cfa547 '''[[대한민국 국회의원|{{{#cfa547 대한민국 국회의원}}}]] ([[부산광역시|{{{#cfa547 부산}}}]] [[중구·영도구|{{{#cfa547 중구}}}]])'''}}} || ||<width=30%> ''선거구 조정''[br][[김정길(1945)|김정길]][*A 부산 중구·동구·영도구의 제12대 국회의원] [[박찬종]][*A] ||<width=5%> → ||<width=30%> '''제13대 김광일''' ||<width=5%> → ||<width=30%> 제14대 [[정상천]] || [[파일:external/tv03.search.naver.net/201502271724255441.jpg|width=180]] 金光一 [[1939년]] [[9월 11일]] ~ [[2010년]] [[5월 24일]]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김녕 김씨|김녕]](金寧)[[http://www.rokps.or.kr/profile/profile_view.asp?idx=358&page=1|#]]. == 생애 == 1939년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서 태어났다.[[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4657|#]] [[경남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고등고시 사법과 15회에 합격하고 [[10월 유신|유신 정권]] 시절 [[대구지방법원]] [[판사]]를 지내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학생에게 무죄를 선고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자 사표를 내고 [[부산광역시|부산직할시]]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도 1979년 [[부마민주항쟁]]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80년대 내내 부산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부림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때마다 학생운동가, 민주화운동가들을 변호하였다. 부산지역 재야민주화운동의 핵심인물로 [[노무현]], [[문재인]] 등과 함께 1987년 [[6월 항쟁]]에 참여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이 부산 재야의 대표격인 김광일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자신을 포함한 재야인사 3인 부산지역 공천'을 조건으로 해서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이때 김영삼에게 추천한 재야인사가 [[노무현]]과 [[문재인]]인데 노무현은 제안을 받아들여서 통일민주당에 입당해서 총선에 출마하였고, 문재인은 거절하고 변호사로 남았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중구(부산)|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0년 [[3당 합당]] 때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1990년)|꼬마민주당]]에 남았다. 꼬마민주당이 [[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1991년)|민주당]]이 되자 거기에 따라가지 않고 1992년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에 입당하였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정상천]]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제14대 대통령 선거]] 직전 [[정주영]]의 당 운영을 비판하며 통일국민당을 탈당했다.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김영삼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서 [[대통령비서실|대통령 비서실장]]과 초대 [[국민권익위원회|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서구(부산)|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정문화]]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여담 == * 영화 [[변호인(영화)|변호인]]에 나오는 김상필이 바로 김광일을 모티브로 삼은 인물이다. *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 당시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0404100029|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을 향해 "열등·우월의식이 뒤섞여 균형감각을 잃은 인물이다."는 말을 하며 정치계에 입문시킨 것을 후회한다는 발언을 했다. 2008년 2월에는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22/2008022201304.html|~~또~~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퇴임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참 불쌍한 친구다. 우리가 그를 [[철종(조선)|강화도령]]으로 앉힌 셈이다."'''라는 말로 에둘러 공격하기도. 2004년 당시 인터뷰를 보면 노무현이 본인의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성격을 보고 변호사 시절에 실망했다는 언급도 했는데, '''애초에 노무현 변호사를 김영삼한테 추천해서 정치권에 입문시킨 이가 바로 김광일 본인일 뿐만 아니라 노무현과 함께 [[민주당(1990년)|꼬마 민주당]]에서도 활동한 이력까지 있는건 덤.''' 결국 노무현과 사이가 틀어진 것을 두고 단순히 정치적 시각의 차이를 넘어서 노무현에게 인간적인 흠이 있었다는 식으로 돌려깐 것에 가까운데, 애초에 변호사 시절 실망했다면 그 때부터 절교를 했어야지 PK 지역의 거물급 인사인 김영삼에게 굳이 추천해서 정계에 입문시키고 정치 활동까지 같이 한 건 모순이기 때문. 또한 [[노무현 명패사건]]을 두고 당시 청문회 스타로 등극했던 노무현이 또 다른 청문회 스타의 등장을 막으려는 계산하에 행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이 부분도 사실 관계가 다르다. 1989년 12월 31일 5공 청문회 마지막날 국회 본회의장에 출석한 전두환은 사전에 전달된 질문조차 제대로 답변하지 않은 채 두루뭉실한 변명 섞인 일장연설만 하다가 야당 의원들의 야유가 터져나오자 퇴장해버렸고, 이 때 노무현이 바닥에 명패를 집어던졌다. 이미 청문회가 끝난 상황에 바닥에 명패를 던진 것을 청문회를 망치려 전두환한테 명패를 던졌다는 식으로 모는 것은 어불성설. * 그러나 위와 같이 [[노무현]]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해놓고도 정작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 사유가 약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노무현에 대한 감정이 안 좋은 것과는 별개로 법률적인 관점은 인권변호사 시절과 다르지 않은 듯. == 선거이력 == *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중) || '''[[통일민주당]]''' || '''21,731 (45.34%)''' || '''당선 (1위)''' || 3당합당 거부[br]1992년 [[통일국민당]] 입당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중) || [[통일국민당]] || 11,483 (28.38%) || 낙선 (2위) ||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서) ||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 || 13,562 (20.20%) || 낙선 (3위) || || [[분류:법조인 출신 정치인]][[분류:합천군 출신 인물]][[분류:김녕 김씨]][[분류:대통령비서실장]][[분류: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 인물]][[분류:제13대 국회의원]][[분류:통일민주당 국회의원]][[분류:통일국민당 국회의원]][[분류:경남고등학교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1939년 출생]][[분류:201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