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한국은행 총재)] [[파일:김건.jpg]] * 金建 * [[1929년]] ~ [[2015년]]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금융인. 서양화가 [[나혜석]]의 3남으로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하였다. == 상세 == 1929년 [[경상남도]] [[부산광역시|부산부]]에서 변호사 김우영[* [[교토대학|교토제대]] 법학부 졸]과 서양화가 [[나혜석]]의 3남으로 태어났다. [[대전고등학교|대전중학교]]를 거쳐 [[1948년]]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정치외교학부|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 동기로 [[조규창]] 전 국회의원이 있다.] [[1951년]] [[한국은행]]에 입행한 그는 [[산업통상자원부|상공부]] 상무관으로 [[서독]]에 파견간 것을 제외하면 [[1978년]]까지 한국은행 한 곳에 근무한 '한은맨'이었다. 이 기간 동안 외환관리부장, 조사1부장, 자금부장, 이사 등 요직을 거쳤다. 그러나 [[1978년]] [[한국수출입은행]] 감사로 전보 조치되었는데 당시 재무부의 수장인 [[김용환]]과 갈등을 빚은 것이 인사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1991년 8월 5일 [[매일경제신문]]] [[1980년]] [[한국은행]] 부총재로 복귀하였고, [[금융감독원장|은행감독원장]], [[한국거래소|증권거래소]] 이사장 등을 맡았으며, [[1988년]] [[한국은행]] 총재에 선임되었다. [[민주화]] 이후 최초의 총재인 그는 한국은행의 관치로부터의 독립에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임 첫해 '한국은행 독립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였으며, [[기획재정부|재무부]] 장관의 금융통화위원회 의장 겸임을 비판하는 등, 당시 금융행정의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재무부]]와 대립했다. 이러한 노력은 퇴임 이후인 [[1997년]] 한국은행법 개정으로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겸임하게 되면서 성사되었다. 2015년에 별세하였다. [[분류:1929년 출생]][[분류:2015년 사망]][[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한국은행 총재]][[분류:공공기관장]][[분류:금융감독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