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align=right><bgcolor=white,#191919> [[파일:길양수.jpg|width=300px]] || || 성명 ||길양수(吉梁洙) || || 이명 ||길양수(吉洋秀), 길양근(吉亮根) || || 생몰 ||[[1914년]] [[1월 13일]] ~ [[1986년]] [[3월 18일]] || || [[출생지]] ||[[전라남도]] [[장흥군]] 장평면 등촌리 || || 사망지 ||[[전라남도]] [[보성군]]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길양수는 1914년 1월 13일 전라남도 장흥군 장평면 등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선린상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9년 12월 [[광주학생항일운동]]에 호응하여 동조시위를 펼 것을 결심하고 조회를 할 때 단상에 뛰어올라 만세를 고창한 후 시위를 선동하다가 퇴학처분을 당하였다. 1931년 6월에는 [[사회주의]]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에 가입하여 장흥군 조직부 및 장평면 책임자로 피선되어 농민조직의 확대강화와 일본인 지주 및 친일 지중 대한 소작쟁의의 활동을 펴는 한편 야학을 개설하여 조직강화에 힘썼다. 그러다 1934년 2월 [[일본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보성군으로 이주해 조용히 지내다 1986년 3월 1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길양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장흥군 출신 인물]][[분류:1914년 출생]][[분류:1986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