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조선 영의정(광해군-경종))] ||<table align=right><-4><:> [[파일:ssu007597.jpg|width=400]] || || '''출생''' || [[1562년]] || '''성향''' || 문신 || || '''사망''' || [[1624년]] || '''성별''' || 남성 || || '''자''' || 사정(士靖) || '''시대''' || [[조선시대]] || || '''호''' || 만전(晩全) || '''시호''' || 문정(文貞) || ||<-2> '''본관''' ||<-2> [[행주 기씨]] || [목차] == 개요 == 기자헌은 조선시대 99대 [[영의정]] 출신이다. [[인조반정]] 때 반정에 불응하였다가, 수감된 후 처형을 당하였다. == 생애 == [[1582년]]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유생이 되었다. [[1604년]] 사헌부대사헌에 발탁되고 거듭 승진해 공조판서, 병조판서,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서 [[우의정]]과 [[좌의정]]으로 승진했으며 이때 소북의 [[유영경]] 등이 [[영창대군]]을 앞세워 [[광해군]]의 즉위를 저지하려 하자 그는 광해군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선조(조선)|선조]]가 광해군을 폐하고 영창대군을 세자로 삼으려 하자 이를 끝까지 반대하여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게 했다. [[1623년]]에 [[인조반정]]에 성공을 하자 [[이원익]]에 부름을 받았으나, 옛 주인을 배신을 할 수 없다며 사양하고 관직에서 물러았다. 그러나 [[인조]]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나 물증이 없어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1624년]]에 [[이괄의 난]]으로 인해 이괄과 내통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처형을 당하였다. 가족관계로는 부인 이씨는 [[덕흥대원군]]의 장남이자 선조의 형인 [[하원군]] 이정의 딸이며 아들로는 기순격과 기준격, 기신격, 기민격이 있다. 이중 기준격은 [[허균]]과 친했으나, 허균이 역모를 꾀한다고 고변했다. 결국 허균은 처형당했는데 다음 해에 고변을 늦게 하였다는 죄목으로 자신도 강릉에 유배당하였다. 인조반정 후 아버지, 형과 함께 모함을 받아 처형된다. == 기타 == 기자헌은 감옥에 있으면서 내통할 가능성이 없었으나, 그의 사촌형제 기익헌이 [[이괄]]과 내통을 하게 되어서 처형에 영향을 미쳤다. [[어우야담]]의 저자 유몽인과 공통점이 있는데, 둘다 비록 탐관오리라는 악명이 있었지만, 강경노선으로 일관한 북인 중에서는 중립을 지키는 인사였으며 폐모론에 반대했다. 그러나 둘다 반정 직후 정국의 혼란 속에 모함을 받아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분류:조선/인물]][[분류:영의정]][[분류:1562년 출생]][[분류:1624년 사망]][[분류:행주 기씨]][[분류:나무위키 한국사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