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th=400><table bordercolor=black><bgcolor=black>'''[[고사성어|{{{#white 고사성어}}}]]'''|| ||<:><width=100>{{{+5 '''[[錦]]'''}}} ||||<:><width=100>{{{+5 '''[[衣]]'''}}} ||||<:><width=100>{{{+5 '''[[夜]]'''}}} ||||<:><width=100>{{{+5 '''[[行]]'''}}} || ||<:>비단 금 ||||<:>옷 의 ||||<:>밤 야 ||||<:>다닐 행 || [목차] == 겉 뜻 == 비단옷을 입고 밤거리를 돌아다닌다 == 속 뜻 == 자랑할 만한 일이 생겼음에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는 것은 아무 가치 없는 일이란 의미로 쓰인다. ~~[[삽질]]~~ == 유래 == 진나라가 멸망한 후, 항우는 공이 있는 군벌들과 측근들에게 땅을 나눠주었다. 이것이 [[항우의 18제후왕 분봉]]. 이 때 자신도 어디를 영토로 삼을지 고민을 했는데, 유생 한생이 유방과 다른 제후들을 견제하면서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서 머무르면서 세력을 기르자고 했지만 [[항우]]는 반대했다. 그는 황폐한 함양 지방이 싫었고--사실 자기가 다 때려부쉈다-- 초나라로 돌아가 고향 사람들에게 공적을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귀해졌는데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이나 다름없소'''(錦衣夜行). 누가 그것을 알아주겠소? 이 고사성어는 항우가 그만큼 고향을 좋아하는 것과 더불어 자신의 고향 사람만을 잘 대해주는 것을 나타내주는 말이기도 하다. 또 항우의 전략적 식견이 얼마나 좁은지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함양이 자리잡은 관중 평야를 둘러싼 하수와 진령산맥은 천혜의 요새였고, 두 자연 요소가 만나는 함곡관만 틀어막아버리면 외부 세력이 관중 안으로 진격하는 것은 당시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한 관중 평야의 무시무시한 생산력은 그 당시 중국 어디와 비교해도 제일의 생산력을 자랑했다. 여길 포기하고 당시로서는 깡촌 중에도 깡촌이던[* 초나라의 영역이던 양자강 일대의 경제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10세기 무렵부터다.]초나라로 돌아간 것은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실책이었다. 단, 이 말이 나왔을 때는 항우의 몇 달에 걸친 파괴로 관중 땅의 생산력은 일시적으로 끊어지다시피 한 상태이기는 했다. --즉 자기가 망쳐놓고 여기 상태가 나쁘다고 싫증내어 떠났다는 말이다--[* 농담이 아니라 항우는 '''사람 목숨 파리 목숨이던 그 옛날 기준에도''' 지나치게 학살을 많이 한다고 욕을 먹었다. [[항우]] 문서와 [[신안대학살]] 문서 참조.] 만약 항우가 지나치게 파괴하지 않고 적당히 처리하고 눌러앉았다면, 관중은 유방이 아니라 항우의 중요 거점, 더 나아가 대륙 통일의 기반이 충분히 될 수 있었다. 결국 상태가 안 좋은 것도 항우 스스로 만든 결과니 자업자득이다. 이런 처지에서 어떻게든 물자 공급과 내정을 해낸 [[소하]]가 워낙에 괴물이었을 뿐이다. 한생은 이 말을 듣고 물러나면서 '''인언 [[초인목후이관]], 과연!'''이라고 뇌까리며 항우를 깠고, 그걸 들켜 격분한 항우에게 [[팽형]]을 당하고 말았다. 여기서 파생된 사자성어인 [[금의환향]]이 더 유명하며 설명도 거기에 더 잘 돼있다. [[세조(조선)|세조]]는 이 말을 항우가 아니라 유방이 한 줄 알았다고 한다. == 관련 문서 == * [[고사성어]] [각주] [[분류:고사성어]][[분류:항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