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가야 국왕)] ||<tablealign=center><:> '''왕호''' ||<:> 금림왕(錦林王) || ||<:> '''성''' ||<:> 미상 || ||<:> '''이름''' ||<:> 미상 || ||<:> '''생몰년도''' ||<:> ?~? || ||<:> '''재위 기간''' ||<:> ?~? || [목차] == 개요 == >'''금림왕릉(錦林王陵): 현의 서쪽 2리쯤 되는 곳에 옛 무덤[古藏]이 있는데, 금림왕릉이라고 일컫는다.''' >錦林王陵[縣西二里許有古藏俗稱錦林王陵]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9권 경상도 고령현 조 고적 편에서. 금림왕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다. [[반파국]]의 왕. 사서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조선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기록이 전무한 왕이기 때문에 업적이나 정확한 재위 기간은 전혀 알 수가 없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거꾸로 [[대가야]]의 다른 국왕의 릉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가 [[이진아시왕]]과 동일인물이라는 추정도 존재한다. 錦이라는 글자는 [[마립간|寐錦]] 등에서 쓰였던 글자이므로, 금림이라는 명칭은 "마립간인 림(林)"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 유물 == [[파일:external/blog.donga.com/1623466731390812004.jpg]] 지산동 고분 47호에서 출토된 금관. 주요 유물로는 [[호암미술관]]에 보관 중인 [[대한민국의 국보]] 제138호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가야 금관]]이 있다. 이 가야 금관의 경우 [[https://www.facebook.com/notes/%EC%98%A4%EC%84%A0%EC%9B%85/%EA%B5%AD%EB%B3%B4138%ED%98%B8-%EA%B0%80%EC%95%BC%EA%B8%88%EA%B4%80%EC%9D%98-%EC%B6%9C%ED%86%A0%EC%A7%80%EC%97%90-%EB%8C%80%ED%95%9C-%EC%96%98%EA%B8%B0/358313810877019|발굴 비화가 존재]][* 간단히 설명하자면 [[도굴꾼]]이 도굴해낸 금관을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의 형인 이병각에게 판매하려고 했는데 도굴꾼들은 처벌받고 해당 금관은 고스란히 삼성 오너 손에 들어왔다는 내용이다.]하는데 [[삼성그룹]] 측에서는 부정하고 있는 상황. == 기타 ==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현의 서쪽 2리쯤 되는 곳에 있다”라고 밝힌 금림왕릉은 1939년 부분 발굴 당시 국보 138호인 가야 금관을 비롯해 칼, 금귀걸이, 은팔찌, 금동 화살통 등 6,500여 점의 유물이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1939년에 발굴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 47호가 금림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의 [[왕릉(무덤)|왕릉]]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고령지역이 대가야의 중심지인 점과 지산동 고분군이 5세기경 조성된 고분군임을 감안하면 대가야의 3대 ~ 4대 왕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김태식, 대가야의 세계와 도설지(1996), 진단학보][[https://yubin1226.blog.me/221540393416|관련 링크]] 다른 대가야 왕들보다 인지도가 가장 낮은 편. 2017년 경상일보에서 연재된 소설인 하지태왕기에서 금림왕이 대가야 관등을 정비했다고 언급되는 것을 제외하면 미디어나 매체에서의 등장은 거의 없다. [include(틀:로그 누락 문서)] [include(틀:로그 누락 문서/기여자 내역, 문서명=금림왕)] [[분류:가야의 왕]][[분류:생년 미상]][[분류:몰년 미상]][[분류:로그 누락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