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금령총 다등식 등잔.png]] [목차] == 개요 == 1924년 [[금령총]]에서 발굴된 [[신라]]시대 [[등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금령총 다등식 등잔2.png]] [[https://www.chf.or.kr/c2/sub2_2.jsp?thisPage=1&searchField=&searchText=&date1=201712&brdType=R&bbIdx=105348|사진 출처 : 한국문화재재단 등잔과 촛대]] 다배식토기(多杯式土器), 여러잔토기(─盞土器), 모자고배(母子高杯) 등으로도 부른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일본인 우메하라(梅原末治) 등이 [[금령총]]을 발굴·조사하던 중 발견한 신라시대 등잔으로,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소형방제경(小形髣製鏡), 주형토기(舟形土器), 그림이 그려진 백화수피제(白樺樹皮製), 금동제신발, 은제허리띠, 띠드리개, 금동장안장틀(金銅裝鞍橋), 발걸이(鐙子), 금동장고리자루칼, 금은장소도(金銀裝小刀), 금동제합(金銅製盒), 쇠솥, 각종 그림이 그려진 칠기(漆器), 유리잔 등 약 만여점의 고신라시대 유물들과 함께 출토되었다. 제작 연대는 같이 출토된 다른 유물들과 마찬가지로 대략 6세기 초엽(서기 500년대 초)으로 추정된다. [[신라]]고분에서만 주로 출토되는 양식으로, 뚜껑이 없는 고배와 같은 [[신라토기]]로 아가리 위에 5개의 잔이 달려 있다. 잔의 바닥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파이프와 같이 속이 빈 아가리에 연결되어 있다. 이 구멍으로 기름을 붓고 심지를 끼워 불을 켜게 된 토제등잔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명기(明器)이다. 이러한 형태의 등잔이 신라무덤에서 굉장히 자주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신라시대 당시에는 [[양산형]]으로 흔하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파일:금령총 다등식 등잔3.jpg]] 경북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392-1 일대 신라시대 적석목곽묘에서 발견된 다등식 등잔. 금령총과는 달리 6개의 잔으로 이루어져 있다.[[http://blog.daum.net/bosar/13431813?np_nil_b=-1|사진 출처 : 경주박물관 특별전시 - X선으로 본 우리 문화재]], [[http://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98#cb|경주서 신라시대 유물 무더기 발견]] [[파일:금령총 다등식 등잔4.jpg]] 현재 해외로 유출되어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6세기경 신라시대 다등식 토기.[[http://kkrjsw.blog.me/110036820926|사진 출처 : 나라밖우리문화재 보스톤미술박물관 No 2 (미국)]] [[파일:금령총 다등식 등잔5.jpg]] [[호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5세기경 신라시대 다등식 등잔. 다른 다등식 등잔과는 달리 [[원뿔]] 모양의 잔이 연결되어 올라가 있는 형태이고, 비어있는 등잔 속에 [[구슬]]이 들어 있어서 등잔을 움직이면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져 있다.[[http://blog.naver.com/gwanak_gu/221376169544|사진 출처 : 관악구 공식 블로그 - 널리널리 알려지길! 문화재 보물단지 호림박물관]] || [youtube(qLVnqhSDIME)] || [[파일:금령총 다등식 등잔6.jpg]] [[http://www.kn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635#0BNY|사진 출처 : 함안군 ‘보물급 희귀 등잔형 토기’ 출토]] [[신라]]보단 수량이 적지만 [[가야]]에서도 이러한 형식의 등잔이 한번씩 발견된다. 2015년에 [[경상남도]] [[함안군]]의 말이산고분군에서 발견된 다등식 등잔. 높이 2.1㎝, 직경 6.1㎝ 크기의 등잔 7개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현재까지 확인된 등잔형토기 가운데 가장 많은 등잔이 부착된 사례다. [[파일:금령총 다등식 등잔7.jpg]] 4세기~6세기 경에 [[신라]], [[가야]] 지역에서 [[양산형]]으로 흔히 쓰이던 모델이지만 의외로 과학적인 형태로 제작되어 있다. 그릇의 입술 부위는 관(管)으로 되어 있고 작은 잔 각각의 내면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어 그 아래의 관과 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의 잔에 액체를 부으면 아래로 흘러 들어가 서로 통하여 같은 높이를 이루게 되고, 다른 잔에 기름을 따로 넣을 필요 없이 일정하게 [[촛불]]이 유지되게끔 고안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 전에 [[한국인]]들이 흔하게 사용하던 등잔으로, 당시 생활문화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 바깥고리 ==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6325|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여러잔토기(─盞土器)]] [[분류:신라의 도자기]]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