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금령총 금제 허리띠1.jpg]] [목차] == 개요 == 金鈴塚 金製銙帶. 1924년 [[금령총]]에서 발굴된 [[삼국시대]] [[신라]]의 황금 [[허리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금령총 금제 허리띠2.png]] 길이 74.1㎝.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일본인 우메하라(梅原末治) 등이 [[금령총]]을 발굴·조사하던 중 발견한 신라시대 황금 허리띠로, [[금령총 금관]],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소형방제경(小形髣製鏡), 주형토기(舟形土器), 그림이 그려진 백화수피제(白樺樹皮製), 금동제신발, 은제허리띠, 띠드리개, 금동장안장틀(金銅裝鞍橋), 발걸이(鐙子), 금동장고리자루칼, 금은장소도(金銀裝小刀), 금동제합(金銅製盒), 쇠솥, 각종 그림이 그려진 칠기(漆器), 유리잔 등 약 만여점의 고신라시대 유물들과 함께 출토되었다. 제작 연대는 같이 출토된 다른 유물들과 마찬가지로 대략 6세기 초엽(서기 500년대 초)으로 추정된다. [[파일:금령총 금제 허리띠3.jpg]] [[파일:금령총 금제 허리띠4.jpg]] 금령총 순금 허리띠의 띠꾸미개는 모두 23매이다. 허리띠에 매달려 있는 드리개는 여러개의 황금판을 이어서 만든 것이 7줄, [[연필]] 모양 장식 2줄, [[곡옥]] 4줄 등 모두 13줄이다. 다양한 형태의 드리개는 당시 왕이나 제사장이 관장했던 여러 가지 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파일:금령총 금제 허리띠5.jpg]] 금판을 이어서 만든 드리개들은 당시 신라인들의 생활용품 및 당시 왕이나 제사장이 관장했던 여러 가지 일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허리띠의 전체 길이는 74㎝ 정도로 다른 신라 무덤 출토품과 비교하면 작은 편인데 이는 [[금령총 금관]]과 함께 금령총의 주인이 어린 아이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파일:금령총 금제 허리띠6.jpg]] 신라의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 바깥고리 == * [[http://www.k-heritage.tv/brd/board/275/L/menu/254?brdType=R&bbIdx=5711|문화재청 문화유산뉴스 : 금령총 금관(金鈴塚 金冠, 보물 제338호)과 허리띠(金製銙帶)]] *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40230|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 금 허리띠]]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01&aid=0010728197|연합뉴스 : 국립경주박물관, 금령총 금관·금허리띠 특별 공개]] [[분류:신라의 금제유물]] [[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