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121~150호)] ||<-2><tablealign=right><tablewidth=360><tablebgcolor=#315288><tablebordercolor=#315288><bgcolor=#fff>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128호}}}]]''' || ||<-2> {{{#fff {{{+1 '''금동관음보살입상'''}}}[br]{{{-1 金銅觀音菩薩立像}}}}}}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삼성미술관 리움, 너비=100%, 높이=100%)]}}}|| ||<width=80> '''{{{#fff 소재지}}}''' ||<bgcolor=#fff>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 || '''{{{#fff 분류}}}''' ||<bgcolor=#fff> 유물 / 불교조각 / 금속조 / 보살상 || || '''{{{#fff 수량/면적}}}''' ||<bgcolor=#fff> 1구 || || '''{{{#fff 지정연도}}}''' ||<bgcolor=#fff> 1968년 12월 19일 || || '''{{{#fff 제작시기}}}''' ||<bgcolor=#fff> [[백제|백제시대]] || [[파일:국보128호금동관음보살입상.jpg|width=540]] [목차] == 개요 == 金銅觀音菩薩立像. 금동관음보살입상은 [[삼국시대]] [[백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구리]]로 주조하여 [[금]]으로 [[도금]]한 금속제 [[관세음보살|관음]][[불상|보살상]]이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 소유였던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 가운데 대다수가 그렇듯이, 금동관음보살입상도 정확한 입수경위나 출토 위치는 현재로선 모르고 단지 [[충청남도]] [[공주시|공주]]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만 알려져 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0815&cid=46659&categoryId=46659|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관음보살입상]]] 정식적인 학술 조사를 통한 [[발굴]]로 발견된 유물도 아니고 불상에 남아 있는 명문도 전혀 없어서, 이 불상이 어디 계열 유물일지 그리고 언제쯤 만들어졌을지도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다.[* 폐사지에서 [[도굴]]한 유물이거나 혹은 어느 절에서 훔쳐온 절도품일 가능성도 있다.] 다만 불상에서 드러나는 여러 특징으로 미루어보아 7세기 초엽 경 삼국시대 백제 불상으로 추정한다.[*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15054&cid=51887&categoryId=53565|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금동관음보살입상]]] 만들어진지 아주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지라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여기저기에 [[녹]]이 스는 등 금동관음보살입상의 보존 상태는 보기에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불상의 형태가 눈에 띄게 결구된 부분 없이 잘 남아 있고 도금 상태도 그럭저럭 양호하다. 금동관음보살입상은 1968년에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128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소장하고 있다. == 내용 == 금동관음보살입상은 높이 15.2cm의 작은 금동불상으로, [[연꽃]]형 대좌 위에 올라선 [[보살]]이 왼손에는 [[법구]] 중 하나인 정병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흘러내리는 옷자락을 잡고 있는 형상이다. 또한 불상의 왼손에 정병이 들려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관세음보살]]의 특징적인 표현으로 본 불상이 관세음보살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조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893881&cid=42642&categoryId=42642|세계미술용어사전 - 관음보살]]] 금동관음보살입상의 머리에는 삼면보관(三面寶冠)이 씌여 있는데 보관의 정면은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관음보살의 정수리 위로는 마치 상투를 튼 것 같은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육계는 무견정상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을 지칭한다. 출처 : [[https://ko.dict.naver.com/ko/entry/koko/9d8868bb6e944cd68a981a8fcc9e3038|네이버 국어사전 - 육계4]]] 관음보살의 얼굴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사각진 형태이며 표정은 양 눈을 감고 미소도 띄지 않는 무표정으로 근엄한 인상을 준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0815&cid=46659&categoryId=46659|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관음보살입상]]] 관음보살이 입고 있는 옷(천의(天衣))은 어깨에서부터 시작해 쭉 늘어져서 바닥의 대좌에 까지 닿는데, 팔을 아래로 쭉 뻗어 오른손으로 흘러내린 옷자락을 잡고 있다. 이렇게 늘어진 옷은 무릎 부근에서 서로 X자로 교차한다. 옷 위에는 불상에 장식하는 구슬 장식인 영락(瓔珞)이 표현되어 있는데,[* 참조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81981&cid=46657&categoryId=46657|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영락]]] 가슴팍에서 한번 만나고 배의 가장자리를 따라 두 줄로 내려오다가 배꼽 부근에서 다시 만난 뒤 다시 갈라져서 다리 아래로까지 늘어져 있다. 이와 같이 불상 의복 표현은 중국의 불상 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삼국시대 불상들에서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15054&cid=51887&categoryId=53565|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금동관음보살입상]]] [[파일:국보128호금동관음보살입상뒷면.jpg|width=565]] 관음보살의 뒷편은 평평하여 따로 조형이 되어 있는 것이 없고 녹이 심하게 슬어있다. 다만 [[광배]]를 달았던 흔적으로 보이는 못이 남아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본래는 머리 뒤의 두광과 몸체 뒤의 신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0815&cid=46659&categoryId=46659|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관음보살입상]],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15054&cid=51887&categoryId=53565|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금동관음보살입상]]] 관음보살이 서 있는 대좌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육각형의 연꽃 대좌 위에 작은 앙련좌가 올라가 있는 모습이다.[* 앙련좌(仰蓮座)는 연꽃이 위로 향한 모양을 새겨 꾸민 좌대를 지칭한다. 출처 : [[https://ko.dict.naver.com/ko/entry/koko/62999aae74d5469d9de03b60a0c1a362|네이버 국어사전 - 앙련좌]]] 이 앙련좌 위에 관음보살이 올라가 있다. 대좌는 아래를 향하고 있는 연꽃잎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연꽃잎이 넓고 부드러워 백제 특유의 연꽃 무늬 양식을 드러낸다고 평가받는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0815&cid=46659&categoryId=46659|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관음보살입상]]] 금동관음보살입상의 제작 연대나 제작 국가는 불명확하지만, 국보 제293호인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과 형태가 유사하다는 점과 백제의 강역이었던 공주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진다는 점 그리고 삼면보관이나 영락 등과 같은 불상의 특징적인 도상 양식을 토대로 짐작해보면 7세기 초엽 경 백제의 불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0815&cid=46659&categoryId=46659|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관음보살입상]],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15054&cid=51887&categoryId=53565|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금동관음보살입상]]] 금동관음보살입상은 출토지가 불명확하며 여기저기 녹이 슬고 금박이 벗겨지는 등 보존상태가 아주 좋지는 않지만, 불상의 형태가 온전하고 표현 기법 등으로 제작 시기를 7세기 초로 추정할 수 있으며 백제 특유의 양식이 잘 남아 있는 불상이라는 점 등의 가치를 인정받아 1968년 12월 19일에 국보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 바깥고리 == * [[https://ko.wikipedia.org/wiki/금동관음보살입상_(국보 제128호)|한국어 위키백과 : 금동관음보살입상 (국보 제128호)]]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0815&cid=46659&categoryId=46659|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관음보살입상]]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15054&cid=51887&categoryId=53565|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금동관음보살입상]]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70011&cid=40942&categoryId=33375|두산백과 : 금동관음보살입상]] == 국보 제128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1280000,11&pageNo=1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금동관음보살입상 (金銅觀音菩薩立像)]] >충청남도 공주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며 백제시대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자그마한 보살입상으로 높이 15.2㎝이다. > >머리에는 꽃무늬로 장식한 반원 모양의 관(冠)을 썼고 그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이 표현되어 있으며,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미소가 없어 근엄한 표정이다. 몸에 밀착된 얇은 옷은 신체의 굴곡을 잘 드러내주지만 옷주름은 선이 분명하지 않다. 어깨에서 몸의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오는 구슬 장식은 배 부근에서 X자형으로 교차되어 다리 위에 장식되었고, 배 한가운데에 둥근 꽃무늬 고리를 달고 있다. 이것은 중국의 옛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금동불상에서도 나타난다. 오른손은 내려서 옷자락을 잡고 있고, 왼손에는 큼직한 정병(淨甁)을 들고 있어 관음보살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6각형의 대좌(臺座)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가 새겨지고, 그 위에 활짝 핀 연꽃무늬를 새긴 대석을 올려 놓은 모습인데, 잎이 넓고 부드러운 연꽃잎은 백제시대 특유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 >보살상 전체에 녹이 많으나 아직도 금색이 찬연하며 백제 불상 특유의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백제의 금제유물]][[분류:불상]][[분류: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