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151~180호)] ||<-2><tablealign=right><tablewidth=360><tablebgcolor=#315288><tablebordercolor=#315288><bgcolor=#fff>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174호}}}]]''' || ||<-2> {{{#fff {{{+1 '''금동 수정 장식 촛대'''}}}[br]{{{-1 金銅 水晶 裝飾 燭臺}}}}}}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리움미술관, 너비=100%, 높이=100%)]}}}|| ||<width=80> '''{{{#fff 소재지}}}''' ||<bgcolor=#fff> [[서울특별시]] [[용산구]] || || '''{{{#fff 분류}}}''' ||<bgcolor=#fff>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생활용구 || || '''{{{#fff 수량/면적}}}''' ||<bgcolor=#fff> 1쌍(雙) || || '''{{{#fff 지정연도}}}''' ||<bgcolor=#fff> 1974년 7월 9일 || || '''{{{#fff 제작시기}}}''' ||<bgcolor=#fff> [[통일신라시대]] || [[파일:국보174호금동수정장식촛대.jpg|width=565]] [목차] == 개요 == 金銅 水晶 裝飾 燭臺. 금동 수정 장식 촛대는 [[통일신라]]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 촛대로 두 점이 한 쌍을 이룬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 소유였던 골동품 중에 국보 등의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대다수 유물들이 그렇듯이, 금동 수정 장식 촛대도 정확한 입수경위나 출토 위치를 전혀 알 수 없다. 따라서 이 한 쌍의 촛대가 어디 계열 유물일지 그리고 언제쯤 만들어진 것일지도 역시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형태적인 측면에서 보면, 통일신라 말기 [[석등]]과 양식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통일신라 시기의 유물일 것으로 추정한다. 본 금동 수정 장식 촛대 2점은 한 쌍으로 묶여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17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삼성 [[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금동 수정 장식 촛대는 촛대 유물로는 유일하게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본 한 쌍의 금동 수정 장식 촛대는 두 점 모두 높이가 36.8cm에 달하고 그 형태와 문양이 서로 아주 유사하여 처음부터 세트로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제작 당시에는 최고급 초호화 촛대 제품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재 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촛대들은 금으로 [[도금]]되어 있으며 몸체와 [[접시]]의 곳곳에는 [[수정(보석)|수정]]이 금속 꽃장식에 박혀 삽입되어 있는데 원래 하나의 촛대에 48개의 수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만들어진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촛대에 입힌 도금이 상당히 벗겨지는 바람에 한 점은 푸른 색으로 녹이 슬었고, 두 점 모두 박혀있던 수정이 빠지고 없어진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본래의 화려했던 모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원형이 잘 보존된 편이다. 두 점 모두 형태가 같은데, 맨 아래 받침대 위로 6개의 짐승 모양의 다리가 있으며, 다리 위에는 큰 접시가 놓여져있다. 큰 접시의 둘레에는 6개의 수정이 박혀 있다. 큰 접시의 중앙부에는 상단의 작은 접시와 만나게끔 위로 솟은 [[손잡이]]용 큰 기둥이 있는데, 큰 기둥과 큰 접시가 만나는 부분에도 수정을 돌려가며 박아놓았으며 기둥은 크게는 3단의 굴곡을 보이면서 위에 얹어진 작은 접시와 만난다. 이 큰 기둥은 3단의 굴곡뿐만 아니라 세밀한 가로선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다. 또한 큰 기둥의 가운데 굴곡에도 수정을 돌려가며 박아놨다. 큰 기둥 위의 작은 접시는 아래의 큰 접시와 형태는 유사하다. 이 작은 접시의 둘레에도 역시 6개의 수정이 박혀 있다. 작은 접시 위에는 초꽂이가 올려져 있다. 초꽂이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아랫 부분은 [[연꽃]]형의 받침으로 12개의 수정이 박혔다. 윗 부분은 초를 꽂는 부분으로 원통형인데 측면에도 수정을 둘러가면서 박아놨다. 금동 수정 장식 촛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현재로선 알 수가 없어 안타깝지만, 이 촛대를 통해 통일신라시대의 금속 조형 및 세공 기술이 대단히 높은 경지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자신의 저서 '서구의 몰락'에서 드러낸 견해를 따르자면) 특정한 시기의 공예 수준은 그 문화의 발전도를 반영하며 본디 실용적인 용도를 가지고 만들어지던 제품들이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점차 공예품적인 성격을 드러내게 되고 장식적인 면이 강조된다는 점을 고려해볼때, 본 금동 수정 장식 촛대를 만들어낸 통일신라시기가 문화적으로 상당히 성숙한 시대였다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금동 수정 장식 촛대는 그 예술품적인 미적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 받아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174호로 지정되었다. == 바깥고리 == * [[https://ko.wikipedia.org/wiki/금동_수정_장식_촛대|한국어 위키백과 : 금동 수정 장식 촛대]]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0848&cid=46657&categoryId=46657|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 수정 장식 촛대]]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1833&cid=42679&categoryId=42679|한국 미의 재발견 - 금속공예 : 금동수정상감촛대]]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70022&cid=40942&categoryId=33062|두산백과 : 금동수정감장촉대]] == 국보 제174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1740000,11&pageNo=5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금동 수정 장식 촛대 (金銅 水晶 裝飾 燭臺)]]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높이 36.8㎝, 밑지름 21.5㎝의 수정이 박힌 금동제 촛대 한 쌍이다. > >전체적인 형태는 6장의 꽃잎 모양을 한 받침이 기둥 줄기를 사이에 두고 아래위로 놓여 있다. 아래 받침에는 꽃 모양의 고리로 고정시킨 6개의 짐승 모양의 다리가 받치고 있다. 윗받침의 중앙에는 짧은 줄기가 솟고 그 위에 이중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반원 모양의 받침이 있으며, 위쪽으로는 원통형의 초꽂이가 있다. 받침대 표면에는 양각과 음각의 수법으로 조각을 하였고 곳곳에 수정을 박아 장식하였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지고 도금이 벗겨진 곳도 있다. > >출토지는 알 수 없으나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통일신라 금속 공예의 일면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신라의 금제유물]][[분류:신라의 공예]][[분류: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