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금관총 이모가이 말띠꾸미개2.jpg]] [[http://www.koreanart21.com/review/antiques/view?id=4357|사진 출처 : 금관총의 재구성 - 국립중앙박물관 <금관총과 이사지왕>]] [목차] == 개요 ==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의 [[금관총]]에서 출토된 고[[신라]]시대 말띠꾸미개. 당시 신라인들이 [[오키나와]]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이모가이(芋貝)라는 아열대 소라고둥을 공수해와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금관총 이모가이 말띠꾸미개1.jpg]] [[http://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E41uAQDuKmE2raGBKTrFcPGrGkjvUqXxSpHZiCWQfHY6Nk7a0erNSIKHw5SY3XFQ.new-was_servlet_engine1?nttId=59530&bbsId=BBSMSTR_1008&pageUnit=10&searchtitle=title&searchcont=&searchkey=&searchwriter=&searchWrd=&searchUseYn=&searchCn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mn=NS_01_09_01|사진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 월간문화재사랑, 같음이 만든 다름]] 1921년 [[금관총]]에서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등의 여러 황금 유물들과 함께 발견된 고대 [[한국]]의 [[조개]] 장식품으로, 유물의 제작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대략 5세기 경(서기 400년대)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금관총에서는 순금제[[귀걸이]], 금제와 은제 [[팔찌]], [[반지]] 등과 각종 [[구슬]], 금제와 은제의 [[허리띠]], 금동제[[신발]] 등의 각종 장신구를 비롯하여, [[도검]], [[갑옷]](甲胄), 창신(槍身), 쇠화살촉(鐵鏃), 쇠도끼(鐵斧) 등의 무기류와 말안장금구, 말방울, 말띠장식, 교구, 혁대금구 등의 말갖춤류(馬具類), [[신라토기]], 목칠기, 유리용기, 쇠솥(鐵釜), 금속제용기, 조개제품 등 많은 유물들이 부장되어 있었는데, [[곡옥]](曲玉)을 포함한 각종 구슬류만도 무려 3만 점이 넘었으며, 다른 유물까지 합쳐 약 4만점이 넘는 신라시대 화려한 문화재들이 쏟아져 나왔다.[[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2422&cid=42665&categoryId=42666|한국 미의 재발견 - 고분미술 : 금관총]] 이 말띠꾸미개는 현 [[일본]] [[규슈]]지방 남부보다 더 남쪽바다인 [[오키나와]] 인근에서만 서식하는 "이모가이"라는 아열대 고동껍데기를 가공해 만들었다. 원뿔처럼 생긴 "이모가이"는 구멍주변이 편평하고 소용돌이처럼 둥굴게 말려 있는데 이 부분을 다듬어서 장식한 것이다. 금관총 이외에도 [[황남대총]] 북분, [[천마총]] 등 신라무덤에서 자주 출토대는 "이모가이"는 4세기~5세기 경 당시 신라인들이 저 멀리 [[오키나와]] 주변까지 거친 바다를 뚫고 진출하여 활발한 교역 활동을 벌였음을 증명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파일:금관총 이모가이 말띠꾸미개3.jpg]]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에 신라인들이 [[오키나와]] 지역의 재료를 수입하여 만들어낸 조개 공예품으로, [[천마총 야광조개국자]], [[황남대총 야광조개국자]], [[황남대총 남분 앵무조개잔]] 등과 함께 당시 신라의 조개공예 기술 및 국제 교역 활동에 대하여 연구해 볼 수 있는 자료다. [[분류:신라의 공예]]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