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금관총 금반지1.jpg]] [[http://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35816567|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 금 반지]] [[파일:금관총 금반지3.jpg]] [[파일:금관총 금반지4.jpg]]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5&cp_code=cp0445&index_id=cp04450441&content_id=cp044501840003&search_left_menu=2|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 금관총 금반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79387&cid=49286&categoryId=49286|#]] [목차] == 개요 == 1921년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의 [[금관총]]에서 출토된 고[[신라]]시대 [[금(원소)|순황금]] [[반지]] 10여점. 현재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분산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금관총 금반지2.jpg]] [[일제강점기]]인 1921년 [[금관총]]에서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등의 여러 황금 유물들과 함께 발견된 [[한국]]의 금반지 10여점으로, 유물의 제작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대략 5세기경(서기 400년대)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금관총에서는 순금제[[귀걸이]], 금제와 은제 [[팔찌]], [[반지]] 등과 각종 [[구슬]], 금제와 은제의 [[허리띠]], 금동제[[신발]] 등의 각종 장신구를 비롯하여, [[도검]], [[갑옷]](甲胄), 창신(槍身), 쇠화살촉(鐵鏃), 쇠도끼(鐵斧) 등의 무기류와 말안장금구, 말방울, 말띠장식, 교구, 혁대금구 등의 말갖춤류(馬具類), [[신라토기]], 목칠기, 유리용기, 쇠솥(鐵釜), 금속제용기, 조개제품 등 많은 유물들이 부장되어 있었는데, [[곡옥]](曲玉)을 포함한 각종 구슬류만도 무려 3만 점이 넘었으며, 다른 유물까지 합쳐 약 4만점이 넘는 신라시대 화려한 문화재들이 쏟아져 나왔다.[[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2422&cid=42665&categoryId=42666|한국 미의 재발견 - 고분미술 : 금관총]] 금관총 금반지가 다른 신라시대 금반지와 가장 크게 구별되는 특징은 바로 [[그물]]무늬이다. [[반지]]와 반지의 윗면을 [[마름모]]꼴로 조금 넓게 만든 후 표면에는 길이방향으로 새김눈테를 새겨 장식성을 더했다. 이는 함께 발견된 [[금관총 금팔찌]]에서도 발견되는 금관총만의 고유 특징이다. [[신라]]는 삼국 중 유일하게 반지 문화가 성행하였던 국가로, [[고구려]]의 경우 안학궁지 제2호분에서 청동제 반지가 출토된 적이 있으나 유물이 많지 않고 형태도 조잡하며, [[백제]] 역시 각종 호화스러운 유물이 출토된 [[무령왕릉]]에서조차 반지는 전혀 출토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거의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6521&cid=46671&categoryId=46671|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반지]] 두 국가 모두 반지 유물, 특히 금반지가 발견된 경우는 고구려는 총 2점, 백제는 공주읍 우금리 고분에서 단 1점이 나왔을 뿐이다. 반면에 신라는 고분을 하나 조사할 때마다 금반지들이 쏟아지는데, 특히 이 금관총 금반지들은 새김눈이 표현된 고리를 표현하여 [[황금]] 위세품으로서의 가치가 더욱 높다.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 [[한국]]에서 만들어진 금반지들로, 오직 신라 고분에서만 발견되는 정교한 황금반지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분류:신라의 금제유물]]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