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郄儉 = == 행적 ==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의 인물. 자는 맹절(孟節). 양성현 사람으로 [[박물지]]에서는 [[조조]]가 초대한 방사 중의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곡식을 피했다고 한다. [[왕진#s-2|왕진]]을 스승으로 해 수십 년 모셔 중단소이법을 전수받아 도세[* 삶과 죽음의 현실을 극복하고 열반에 들어가거나 미혹한 세계에서 깨달음의 피안에 이른다는 것.]할 수 있게 되었다. 대추씨 크기로 몸을 작게 해 먹지 않고도 10년을 버틸 수 있었으며, 공기를 닫아 숨을 쉬지 않은 채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아 죽은 사람처럼 해 1백 일이고 반년이고 견뎌낼 수 있었다. 이 방법이 왕진이 습득한 교간인의 비법으로 집안도 꾸리고 있었다고 하며, 사람됨이 진실하고 조심성이 많아 말을 마구하지 않았다. 조조가 여러 방사들을 초대하면서 자신을 위해 초막집을 지어주고 여러 방사들을 부릴 수 있게 해줬으며, 진나라의 혜제와 회제 때 장안의 시중에서 극검을 본 적이 있다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포박자에서는 사냥을 나섰다가 빈 무덤에 떨어졌고, 커다란 거북이가 입을 벌리고 숨을 삼키느라 하는 것을 보았는데, 거북이 하는 대로 따라 했더니 더 이상 허기를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 관련 사료 == * 박물지 * 신선전 = 郤儉 = [[후한]] 말의 인물. [[극정]]의 조부, 극읍의 아버지. 영제 말에 익주자사를 지냈고 백성들을 수탈해 소문이 먼 곳까지 알려졌으며, 영제가 극검을 불러 형벌을 가하려 하면서 유언을 감군사로 삼고 익주목을 겸임하게 했다. 이 때 영제가 내린 조서에서는 이전 자사인 유준과 함께 탐욕스럽고 흉악하면서 절제가 없어 거두는 것이 난잡하게 어지러워 백성들이 크게 울부짖어 들판을 채웠다고 언급했다. 188년에 익주에서 [[마상]], [[조지(삼국지)#s-4|조지]] 등이 반란을 일으켜 낙현에 왕요, 조파 등을 보내자 살해당했다. 그가 살해당한 후에는 익주목으로 들어온 유언이 익주자사의 치소를 낙현에서 면죽으로 옮겼다. == 미디어믹스 == 소설 삼국지 정훈전에서는 정훈이 익주목으로 부임해 익주를 공격하자 감녕이 정훈에게 투항해 자신을 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했으며, 부하들이 나가 싸우는 것을 권하자 감녕을 당해내지 못할까 겁내다가 감녕이 무서운 것은 장강에 있을 때 뿐이라고 하자 군사 오 천을 모아 직접 싸우러 덕양에 군사를 주둔했다. 감녕을 보자 욕하면서 장수들에게 누가 감녕과 싸우러 갈 것인지 물었지만 아무도 답하지 않자 궁수들을 시켜 활을 쏘게 했지만 큰 피해를 주지 못했으며, 감녕, 관우, 장비, 장합 등이 군사를 이끌고 돌격하자 도망갔다. 극검은 계속 도망가면서도 장비의 추적을 받다가 광한의 현위로 있던 엄안을 발견하고 자신을 구하라고 외쳤지만 엄안의 대도에 참수된다. [각주] [[분류:위나라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