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Syd_1358.jpg]] (Gnaeus Domitius Calvinus) 기원전 96년 ~ 기원전 ??년 [[고대 로마]]의 인물.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가문은 오래된 평민귀족 가문이기는 했으나 집정관을 배출한 지는 200년이 넘은 가문이었다. 악명 높은 선거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53년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휘하에 들어가 [[카이사르의 내전]]에서 끝까지 카이사르의 일파로 남아서 싸웠는데, 이는 집정관급 인사로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것이었다. [[파르살루스 전투]] 직전에는 별동대를 맡아 폼페이우스파 메텔루스 스키피오의 그리스 2개 군단을 마크했으며, 파르살로스에서는 카이사르군의 중앙을 지휘하였다. 파르살로스에서 승리한 후에는 요충지인 아시아 속주 총독을 맡았지만 [[미트리다테스 6세]]의 아들인 보스포루스 왕 파르나케스의 침공에 대패하여 카이사르가 수습을 위해 이집트에서 급히 출동해야 했다.[* 카이사르가 파르나케스를 상대로 젤라 전투에서 승리한 후 남긴 말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고 한다.] 이후로도 충실한 카이사르파로 남은 칼비누스는 카이사르 암살 이후에는 [[옥타비아누스]]의 충실한 지지자가 되었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화해하고 제2차 [[삼두정치]]를 결성하자 이를 지원하며, [[필리피 전투]] 직전에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에게 해군으로 지원군을 보내는 역할을 맡았으나 대패하여 2개 군단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40년 두 번째 집정관의 영예를 안았고, 옥타비아누스의 서방 정권에서 히스파니아 속주 총독을 지내며 성공적인 군사 활동을 수행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취임 후 한참 뒤인 기원전 20년까지도 생존해 고위 사제직을 맡으며 명예로운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딱히 도덕적이지도 능력이 출중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카이사르-옥타비아누스를 초기부터 지지하며 줄을 잘 탄 덕분에 집정관 2회와 주요 속주 총독을 역임하며 순조로운 커리어를 쌓은 행운아로 평가할 수 있다. [[토탈 워: 로마2]]의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 캠페인에서 옥타비아누스 팩션의 장군으로 등장한다. [[분류:고대 로마/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