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조선의 후궁(환조 ~ 연산군))]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C23352><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23352 0%, #C23352 20%, #C23352 80%, #C23352)" '''{{{#ffd400 조선 성종의 후궁[br]{{{+1 귀인 정씨 | 貴人 鄭氏 }}}}}}'''}}} || ||<bgcolor=#C23352> '''{{{#gold 본명}}}''' ||<-2>정금이(鄭金伊) || ||<width=50><bgcolor=#C23352> '''{{{#gold 출생}}}''' ||<-2>미상 || ||<|2><bgcolor=#C23352> '''{{{#gold 사망}}}''' ||<-2>[[1468년]]^^([[세조(조선)|세조]] 14년)^^ [[6월 17일]][br]{{{-2 (향년 알 수 없음)}}} || ||<-2>[[조선]] [[한성부]] [[창경궁]] 뜰 || ||<bgcolor=#C23352> '''[[본관|{{{#gold 본관}}}]]''' ||<-2>[[초계 정씨|초계(草溪)]] || ||<width=50><bgcolor=#C23352> '''{{{#gold 부모}}}''' ||<-2>부친 정인석(鄭仁石) 모친 알 수 없음 || ||<bgcolor=#C23352> '''{{{#gold 부군}}}''' ||<-2>[[성종(조선)|성종]] || ||<bgcolor=#C23352> '''{{{#gold 자녀}}}''' ||<-2>2녀 1녀 ^^(장남)^^ [[안양군]] ^^(차남)^^ [[봉안군]] ^^(장녀)^^ 정혜옹주 || [목차] == 개요 == [[조선]] [[성종(조선)|성종]]의 [[후궁]]. 본명은 정금이(鄭金伊)로,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첫째 딸은 일찍 사망했다. 둘째 딸이 막내인 정혜옹주.] == 생애 == 성종실록에서 정씨는 종3품 숙용, 또는 정3품 소용으로 등장하는데, 정씨의 동생을 영구히 양인으로 삼는다는 전교가 있었다.[* 성종실록 220권, 성종 19년 9월 18일 무인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909018_002|#]] ] 이를 통해서 정씨의 본래 신분이 미천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정씨는 이외의 기록이 전무하다가 1477년(성종 8) 익명서 사건으로 언급된다. >지난 정유년 3월 20일에 엄 숙의(嚴淑儀)가 정 숙용(鄭淑容)과 더불어 중궁 및 원자를 모해(謀害)한다는 글 두 통과 비상(砒礵) 약간과 압승책(壓勝冊) 한 권을 작은 상자에 담아 가지고 백저포(白苧布) 보자기로 싸서, 권 감찰(權監察)의 집 사람이라 일컫고 권 숙의(權淑儀)의 【권 숙의는 덕종(德宗)의 후궁으로, 여러 숙의를 총괄하여 다스렸다.】 집에 던졌는데, 권숙의의 집 사람이 그 상자를 가지고 대궐에 나아와서 숙의에게 바쳤다. > >---- >《조선왕조실록》 성종 10년 6월 5일 경인 4번째기사 사건은 한 통의 익명서가 [[의경세자|덕종]]의 후궁인 권 숙의의 집안에 떨어지면서 시작됐다. 익명서의 내용은 "엄 숙의가 정 숙용과 더불어 중궁과 원자를 모해한다"는 것으로 깜짝 놀란 권 숙의가 익명서를 위에 바친 것이다. 처음에는 정씨가 의심 받았지만, 당시 대비전과 성종은 곧 [[폐비 윤씨|왕비]]의 자작극으로 판단한다. 이외에 여러가지 일들로 믿음을 잃게 되는 바람에 왕비는 폐출되어 사가로 쫓겨난다.[* 이미 윤씨가 쌓아놓은 업보들이 --장난아니게 많이-- 있었다. 특히 윤씨는 성종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고 연비, 즉 불로 팔을 지져서 맹세하는 의식을 하겠다고 맹세한 적도 있었는데 그 맹세가 다 거짓말이었다는걸 몸소 보여준 격이었다.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006005_004|#]] ] 이것이 바로 폐비 윤씨의 일인데, 사실 정씨가 다른 후궁인 귀인 엄씨와 함께 원자의 생모였던 폐비 윤씨를 직접적으로 해치거나 모함한 일은 없다. 하지만 이 익명서 사건에 이름을 오르내렸기에 훗날 [[연산군]]의 타겟이 된다. 애초에 성종의 후궁이 한 두사람도 아닌데, 콕 찝어서 '엄 숙의'와 '정 숙용'이라고 익명서에 적시되었을 때부터 폐비 윤씨의 정적이라는 뜻이다. [[연산군]]은 귀인 정씨와 [[귀인 엄씨]]를 [[창경궁]] 뜰에 묶어놓고, 정씨의 소생인 [[안양군]]과 [[봉안군]]을 잡아와, 그녀를 마구 때리게 했다. 당시 날이 어두워 안양군은 어머니임을 짐작하지 못하고 마구 때렸으나, 봉안군은 어머니임을 알아차리고 때리지 않고 흐느꼈다고 한다. 이를 지켜 본 연산군은 더욱 화가 나 그녀들을 몽둥이로 마구 때려서 살해하였다. [[귀인 엄씨]]와 귀인 정씨가 숨이 끊어지고도 연산군의 매질은 그치지 않았으며, [[젓갈]]로 담가 산과 들에 뿌렸다. 그녀의 부친 정인석과 배다른 형제들도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데, 정인석은 아예 뼈를 가루로 만들어 강 건너로 날렸다. == 후손 == 연산군은 할머니 [[인수대비]]에게로 안양군과 봉안군을 끌고 가 갖은 행패를 부렸다. 이후 1주일 뒤에 안양군은 [[충청도]] [[제천시|제천]]에, 봉안군은 [[경기도]] [[이천시|이천]]으로 유배를 갔으며 1년 후에 죽었다. 연산군이 안양군은 어머니를 죽인 죄로, 봉안군은 왕명을 거역한 죄로 사사하였다고 한다. 막내 딸 정혜옹주 또한 15세의 나이로 [[황해도]] [[배천군|배천]]으로 유배를 갔다. 당시 정혜옹주는 [[옹주]]의 작위를 박탈당하고 단지 "한기의 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정혜옹주가 유배간 지 약 6개월 후, 귀인 정씨의 유일한 사위이자 정혜옹주의 남편인 [[부마]] 청평위(淸平尉) 한기(韓紀)도 [[고문]]을 당했다. [[연산군]]은 한기가 익명서를 투서하였다는 이유로 고문을 명령하였으나, 한 차례 고문을 받은 한기는 "저는 나이가 어려 익명서를 투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변명했다. 한기 역시 15세였다. [[중종반정]] 이후 죽은 귀인 정씨와 세 자녀 역시 신분이 복위되었으나, 정혜옹주는 17살 나이에 사망했다. == 대중 매체에서 == 폐비 윤씨를 모함한 후궁으로 유명해서인지,성종과 연산군 시기를 다룬 사극마다 귀인 엄씨와는 쌍둥이처럼 세트로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한다. * 《[[설중매#s-4|설중매]](1984)》: 배우 [[김해숙]] * 《[[한명회(드라마)|한명회]](1994)》: 배우 정유진 * 《[[장녹수(드라마)|장녹수]](1995)》: 배우 정복임 * 《[[왕과 비]](1998)》: 배우 [[김정난]] * 《[[왕과 나(드라마)|왕과 나]](2007)》: 배우 윤혜경 * 《[[인수대비(드라마)|인수대비]](2011)》: 배우 정요숙 [[분류:조선의 후궁]][[분류:폭력으로 죽은 인물]][[분류:생년 미상]][[분류:1504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