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耳塚'''(미미즈카) [목차] == 개요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imizuka-M1773.jpg|width=250px]] 사진 설명 - 일본 [[교토시]] [[히가시야마|히가시야마구]]에 있는 귀 무덤의 오륜탑. 측면에 세겨진 것은 실담(悉曇, Siddham. [[범어]](梵語)의 자모(字母)를 뜻한다.) 문자로, 각 글자마다 아래에서부터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을 상징한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교토의 귀 무덤에 대해 주로 소개하지만 사실은 일본 전국에 많은 것 같은데, 자세한 것은 하술한다. == 상세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eechong2.jpg|width=350px]] 이름 그대로는 [[귀]]를 묻은 [[무덤]]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묻힌 것은 대부분 사람의 [[코]]로[* [[야사(역사)|야사]]에 의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리품으로 날아온 귀를 보고는 "'''사람에게 [[코]]는 하나 뿐이지만 [[귀]]는 둘이니 하나를 죽이고도 둘의 수급으로 늘릴 수 있다'''"며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코를 베라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전리품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군]]이 죽인 조선인들의 [[수급]] 대신 베어갔던 코를 묻은 무덤이다. 당연스럽게도 본래 이름은 "코무덤(鼻塚)"이었으나, 이름이 섬뜩하다고 하여 "귀무덤(耳塚)"으로 바뀌었다. [* 묻힌 대상과는 다른 '귀무덤'이라는 표현으로 돌려 말해 불길함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라고 한다.] 또 일설로는 코무덤이라고 하면 무덤에 있는 코의 개수가 죽인 사람의 갯수와 일치하기 때문에 귀무덤이라고 하면 죽인 사람수를 1/2로 줄일 수 있으므로 그렇게 하였다는 설이 있다. 근데 알아보면 코인지 귀인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이설도 신뢰성이 없다. 그 유래는 [[정유재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부피가 큰 수급 대신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 본국으로 보내도록 하여 각자 벤 수에 따라 포상을 내리도록 지시한 것으로 막상 모아놓고 나니 처치가 곤란한 데다가 일을 지시한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필요가 없어지고 그렇다고 조선에 돌려줄 수도 없게 되자 그냥 한 곳에 파묻은 것이다. 이는 [[임진왜란]] 때의 민간인에 대한 비교적 온화한 태도와는 사뭇 대조되는 것으로 당시 히데요시가 심각하게 미쳐 있었음을 잘 말해준다. 히데요시의 미친 짓에 적극 찬동했던 [[사이쇼 조타이]]는 훗날 무덤을 만들어 주고 비석을 세워준게 히데요시의 자비심을 보여준다는 말을 했다(...). 몇몇 일본군들은 민간인의 경우 코만 베고 살려준 경우도 많았다고 하며 그래서 종전 후 [[호남]]을 중심으로 코가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정유년에 왜적이 두 번째 침범할때에 평수길이 모든 왜군에게 우리나라 사람의 코를 베어서 수급 대신 바치게 하였으므로 왜졸이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면 문득 죽이고 코를 베어 소금에 담가서 수길에게 보내었다. 수길은 이를 점고하여 본 뒤에 그 나라 북망인 대불사 옆에 모두 매장하여 한 구릉을 만들고 제 나라 사람에게 위엄을 보였다고 하니, 사람을 참혹하게 죽인 것은 이것으로도 가히 알 수 있다. 이때문에 그때 우리 나라 사람 중에는 코 없이 사는 자들이 많았다. >---- >이수광, <<지봉유설>> 당시 시대상을 볼때 전과를 확인하기 위해 사살한 적 군인의 귀나 코를 베는 일은 흔했지만[* 조선도 비슷하게 왜군의 머리를 베어 전과를 확인했다.] 이것을 살아 있는 민간인에게 행한 것은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에비'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 하는데 ‘어비’, ‘에비야’, ‘이비야’, ‘어비야’ 등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에비는 ‘아이들에게 무서운 존재를 뜻하는데 “계속 울면 에비 온단다”, “에비, 이런 거 만지면 안 된다.” 등의 경우로 쓰인다. 에비는 ‘이비야(耳鼻爺)’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귀(耳), 코(鼻), 사람(爺)이 합쳐진 말로 귀나 코를 베어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유재란 때 종군한 [[승려]] 게이넨이 쓴 ‘조선일일기(朝鮮日日記)’에도 나오는 내용이며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 [[순사]]를 에비라 불렀다고 한다. 이 부분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피소드/2018년#s-24|2018년 7월 8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이후 일부는 [[1990년]], [[1992년]] [[경상남도]] [[사천시]]와 [[전라북도]] [[부안군]]으로 [[이장]]됐으나, 오늘날에도 완전한 이장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 코무덤에는 조선인 12만 6000명 분의 코가 묻혀 있다. 일본에서도 별도의 관리 예산이 지원되지 않았고 [[대한민국|한국]]에서도 별도의 예산 지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서 3대째 개인이 관리하고 있다가 언젠가부터 교토시에서 관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필 임진왜란의 [[원흉]] 히데요시를 받드는 토요쿠니 [[신사]](豊國神社) 건너편 공원[* 공원 이름도 미미즈카 공원이다.]에 있어서 묘한 기분이 든다. 바로 옆 호코지(方広寺)[*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치기 위해 생트집을 잡았던 문구가 새겨진 범종으로 유명한 절이며, 이 범종은 [[중요문화재]] 공예품 제2239호로 지정되어 있다.]의 대불전터(大仏殿跡) 및 석축과 함께 [[쇼와]] 44년([[1969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는데, 설명판은 [[헤이세이]] 15년([[2003년]]) 세워졌다. [[징비록]] 48화에서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실제로 정유재란이 임진왜란보다 더 잔혹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바로 이런 코 베기 때문이다. 교토에 있는 귀 무덤이 유명하고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일본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1992년]] [[오카야마]][[현(행정구역)|현]] 비젠시 가카토 구마카와산 기슭에서 귀무덤, [[1995년]] 오카야마현 쓰야마시에서 귀 무덤이 발견되었다. [[2014년]] [[쓰시마]][[시(행정구역)|시]] 가미쓰시마 히코텐성 남쪽에서 적석묘로 된 귀 무덤이 발견되었다. 쓰시마 지역의 역사 문헌인 '카미쓰시마지'에서 일본군이 잘라온 조선인의 귀를 공양하기 위해 무덤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발견하고 현장 조사를 벌여 찾아냈다. 교토나 다른 곳에 있는 귀 무덤과 형태가 다르고 다른 무덤과는 달리 표지석 등은 없었지만 현지인들의 진술과 사료가 일치한다고 한다. [[2016년]] 초에는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가스이엔 옆 언덕 숲 속에서도 귀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돌로 만든 높이 1.2m 정도의 사당 양쪽 기둥에 '괵총(馘塚)'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괵총의 괵(馘)은 '귀를 베다'는 뜻으로 곧 귀 무덤을 뜻한다. 이들 귀 무덤들이 [[고니시 유키나가]],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등과 연관되어 있는 걸 보면 정유재란 때 베어온 코나 귀가 일본 여기저기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들어 모두 환수해 오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지만, 당장 교토 귀 무덤도 완전히 환수되지 않고 있는데다가, 국내에 일부나마 환수된 귀 무덤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찾아가려면 [[교토국립박물관]] 북쪽에 있는 도요쿠니 신사, 호코지 건너편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 관련 항목 == * [[경관]] : 3번 항목 * [[임진왜란]] * [[도요토미 히데요시]] [[분류:교토시]][[분류:임진왜란]]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