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안동 권씨]][[분류:예천군 출신 인물]][[분류:1923년 출생]][[분류:2002년 사망]][[분류:건국포장]] || 성명 ||권혁조(權赫朝) || || 일본식 성명 ||權藤哲郞 || || 이명 ||권철휘(權哲輝) || || 자 / 호 ||호(豪) / 우암(宇庵) || || 본관 ||[[안동 권씨]][* 36세손 '''혁(赫)''' 기(奇) 경(景) 영(英) 항렬.] || || 생몰 ||[[1923년]] [[6월 25일]] ~ [[2002년]] [[1월 14일]] || || [[출생지]]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상동[br](현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상동리)[*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 || 추서 ||건국포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권혁조는 1923년 6월 25일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상동(현 예천읍 상동리)에서 아버지 권오환(權五煥)과 어머니 [[고(성씨)|개성 고씨]] 고맹훈(高孟勳)의 딸 사이의 5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일본]] [[주오대학]]에 재학하던 중 1944년 1월 20일 소위 [[학도 특별지원병 제도]]로 [[일본 제국 육군]]에 징집되어 대구 제24부대[* 보병 80연대. 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대구)|남구]] [[이천동(대구 남구)|이천동]] 캠프 헨리 부지에 위치해 있었다.[[https://m.blog.naver.com/bookhunt/110190690140|#]]]에 배속되었다. 그후 그를 비롯한 한국인 학병들은 [[탄약고]]를 폭파하고, 무기를 탈취한 후 일본군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는 당시 제1대대 제3중대에 편성된 [[문한우]]·김이현(金而鉉) 등의 한국인 학병 6명과 함께 8월 8일 집단 탈출에 성공한 후 [[팔공산]]에 입산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되었다. 그해 12월 그는 조선군사령부 [[군법회의]]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고쿠라]](小倉)육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출옥, 귀국하였으며, 2002년 1월 14일 별세하였다. 200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 여담 == * 맏형 권일(權逸)[* 1911~2001. 초명 권혁주(權赫周). 일본식 성명 權藤嘉郞.]은 [[경복고등학교|경성제2고등보통학교]]와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37년 11월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1940년 [[만주국]] 연길지방법원 심판관[[http://db.history.go.kr/id/ma_016_0770_0010|#]], 1943년 [[대정익찬회]] 조사부[[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95200330&localCode=jpn&menuGbn=category&searchCnd=%EA%B0%80&parentName=%ED%95%9C%EA%B8%80%ED%95%AD%EB%AA%A9%EB%AA%85&categoryName=%ED%91%9C%EC%A0%9C%EC%96%B4|#]], 1945년 1월 [[태평양전쟁]] 협력 단체인 지하공장건설일심회 총무부장[[http://db.history.go.kr/id/okch_003_7190|#]][[http://db.history.go.kr/id/hdsr_008_0030_0020_0040|@]]을 지내는 등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에는 일본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고, 1961년부터 1967년까지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1967년 귀국하여 [[제8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 [[제9대 국회의원]]([[유신정우회]])를 지냈다. 권일은 생전에 동생 권혁조의 독립운동 경력을 논하면서,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나처럼 일본에 협력하는 입장에 있던 장남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동생 일로써 세상을 대하는 면목도 섰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두식, 『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창비, 2018.11.20.] * 막내 남동생 권혁채(權赫采)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아이치현]]본부 고문으로 재직 중에 있으며, 2011년 제5회 세계한인의 날에 대통령표창을 수여받기도 했다.[[http://webzine.korean.net/201110/pages/sub01_01_01.j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