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tv.pstatic.net/yonhapnews_30228494.jpg|width=150]] 權泰郁 1907년 10월 15일 ~ 1981년 06월 11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안동 권씨|안동]](安東).[* 33세손 '''태(泰)◯''' 춘(春)◯ 용(龍)◯ 정(正)◯ 항렬] 1910년 [[경상북도]] [[안동시|안동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 마포(麻布)중학교, [[주오대학]] 예과 및 법학부를 졸업했다. [[주오대학]] 재학 중에 도쿄 유학생 반일운동에 관련되어 수감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도쿄에서 치과 재료상을 운영하다 귀국하고 [[경상남도]] 마산부에서 마산귀환동포회 회장, 마산공과학관(馬山工科學館) 관장을 역임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마산]][[부(행정구역)|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대한민국 국회|제헌 국회]] 때 [[미국]]으로 떠나는 [[서재필]] [[박사]]를 대한민국에 머물도록 하자는 요청을 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마산[[시(행정구역)|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2년경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 [[공천]]에서 [[김종신]]에 밀리자 탈당하였다. 그리고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종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1955년)|민주당]] 허윤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정남규(정치인)|정남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자유민주당(대한민국)|자유민주당]]에 잠시 몸담았다. 이후로는 일광산업사를 경영하였다. 1972년 [[제헌동지회]] 소속으로 [[10월 유신]] 지지 성명서를 내는 데 참여하기도 했다. [[분류:제헌 국회의원]][[분류:제2대 국회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분류:안동시 출신 인물]][[분류:안동 권씨]][[분류:주오대학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