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 '''< [[190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width=220]] || || 1908 - [[가브리엘 리프만]] || → || 1909 - '''굴리엘모 마르코니''', 카를 브라운 || → || 1910 - 요하네스 디데릭 판데르 발스 || [[파일:external/www.rugusavay.com/Guglielmo-Marconi.jpg]] '''Il marchese Guglielmo Giovanni Maria Marconi''' '''1874.4.25 - 1937.7.20'''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발명가]], 사업가. 풀네임은 제 1대 마르코니 후작 굴리엘모 조반니 마리아 마르코니. 사상 최초로 [[무선]]통신을 실용화시킨 인물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무선 전신 장치에 관한 [[특허]]를 취득했고, 이를 바탕으로 마르코니 회사를 창립해서 한동안 모든 무선전신을 독점했다. 20세기 초 상당수의 일선 무선 전신기사들이 마르코니 사 소속 파견직원들이었다. 1874년 볼로냐에서 태어났고 1909년에는 무선통신에 관한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근데 사실 본인은 순수 물리학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무선 통신의 발명을 순수과학이 응용과학에 미치는 선영향의 예로 자주 든다. 이탈리아의 공영방송인 [[RAI]](개국 당시 명칭은 URI)와 바티칸 라디오 설립에도 그의 무선통신 기술이 사용됐고, 당시 URI 방송국의 지분도 소유했었다. 그는 1933년 11월에 조선에 온 적이 있다. 일본 도쿄, 교토 등지를 방문한 후 시모노세키에서 연락선을 통해 11월 24일 부산에 온 뒤, 다음날 경성에 와서 구경을 하고 만주국 봉천([[선양시]])로 갔다. 말년에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사상에 찬동해 [[검은 셔츠단]]에 가입하여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병합을 지지하는 등의 [[파시스트]] 활동을 했으며, 이는 그의 업적에 크나큰 오점으로 남았다. [[분류:1874년 출생]] [[분류:1937년 사망]] [[분류:이탈리아의 물리학자]][[분류:발명가]] [[분류:에밀리아로마냐 주 출신 인물]][[분류:지폐의 인물]][[분류:파시스트]][[분류:노벨물리학상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