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감리회 선교사]][[분류:개신교 순교자]][[분류:능성 구씨]][[분류:광주시 출신 인물]][[분류:1882년 출생]][[분류:1907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분류:독립유공자 후손]]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구정서.jpg|width=300px]] || || 성명 ||구정서(具禎書) || || 본관 ||[[능성 구씨]] || || 생몰 ||[[1882년]] [[3월 18일]] ~ [[1907년]] [[7월 16일]] || || 종교 ||[[개신교]] || || 출생지 ||[[경기도]] [[광주시|광주군]] 도척면 궁평리 || || 사망지 ||[[경기도]] [[이천시|이천군]] 이천 장터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구연영]]의 아들이다. == 생애 == 구정서는 1882년 3월 18일 경기도 광주군 도척면 궁평리에서 [[구연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동대문 교회에서 전도사로서 시무했으며, 동지들과 함께 보안회(保安會) 및 자강회(自强會) 회원으로 활약하였다. 1900년에는 엡웻 청년회를 조직하여 청년부 책임자로 활약하다가 낙향한 후 부친 구연영이 조직한 구국회 청년부에서 조직 확대와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상인들을 설득해 3일간 철시(撤市)를 단행하게 했고, 이후에는 의병에 가담해 여주와 원주에서 일본군과 맞섰다. 또한 다른 의진의 의병장과 논의해 의병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할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1907년 [[일진회]] 회원의 밀고로 부친과 함께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은 뒤 7월 16일 부친과 함께 이천군 이천 장터에서 총살당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구정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2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