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선복 具善復''' || || '''생몰년''' || (1718[*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080201&docId=343293471&qb=6rWs7ISg67O1IOyhseuztA==&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출처: 《능성구씨족보》 구선복편.]]] ~ 1786) || || '''직업''' || 관리, 반란자, 군인 || || '''죄명''' || [[상계군]][[반역|을 추대하려 함]] || [목차] == 개요 == 조선 후기 군인으로 [[정조(조선)|정조]] 치세 당시 역모를 꾀하다 죽었다. == 생애 == 본관 [[능성 구씨]](綾城 具氏). 자 사초(士初). 1718년(숙종 44년)에 태어났다. 1738년(영조 14년)에 진사가 되고 [[총융청|총융사]]와 [[훈련도감|훈련대장]] 등을 역임하고, 최고 군사실력자로 [[병조판서]]·[[의금부|판의금부사]]가 되었으나, 1786년(정조 10년) 반란을 일으켜 아들 구이겸, 조카 구명겸과 함께 처형당했다. 죄명은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가 죽자 정조의 조카 [[상계군]] 담을 추대하려 하였다는 이유였으나, 원래부터 성격이 잔인무도하여 재직기간 중에도 하인에서 조정 고관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욕을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인심을 잃었던 까닭도 있었다. 심지어 [[임오화변]] 때 뒤주 속에 갇혀 있는 [[사도세자]]를 능멸하고 희롱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구선복은 장차 후세에 망할 거라고 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던데로 구선복은 [[정조(조선)|정조]] 때 정부 전복을 시도하다가 적발되어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인해서 조선초기 이래 대대로 고위직 무신을 도맡아 한 능성 구씨 일가는 몰락하고 말았다. [[분류:조선의 반란자]][[분류:조선/인물]][[분류:조선의 사형수]][[분류:참수된 인물]][[분류:조선군/군인]][[분류:1718년 출생]][[분류:178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