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니더작센/행정구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oettingen_Marktplatz_Oct06_Antilived.jpg]] ||<-6><table align=right><table width=400><tablebgcolor=#fff><rowbgcolor=#fff><#dd0000> '''{{{#ffffff {{{+1 괴팅겐}}}[br] Göttingen}}}''' || ||<-6><:>[[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DEU_Goettingen_COA.svg.png|width=150]] || ||<#dd0000><-6> '''{{{#ffffff 휘장}}}''' || ||<-6> [include(틀:지도, 장소=독일 괴팅겐, 너비=100%, 높이=100%)] || ||<#dd0000><-6> '''{{{#ffffff 괴팅겐의 위치}}}''' || ||<#dd0000><-6> '''{{{#ffffff 행정}}}''' || ||<width=30%><#dd0000><-2> '''{{{#ffffff 국가}}}''' ||<-4>[[독일]]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 ||<#dd0000><-2> '''{{{#ffffff 시간대}}}''' ||<-4>(UTC+1/+2) || ||<#dd0000><-2> '''{{{#ffffff 주}}}''' ||<-4>[[니더작센]] || ||<#dd0000><-2> '''{{{#ffffff 군}}}''' ||<-4>[[괴팅겐 군]] || ||<#dd0000><-6> '''{{{#ffffff 인문환경}}}''' || ||<#dd0000><-2> '''{{{#ffffff 면적}}}''' ||<-4>116.89km² || ||<#dd0000><-2> '''{{{#ffffff 인구}}}''' ||<-4>118,911명^^(2019년)^^ || ||<#dd0000><-2> '''{{{#ffffff 인구밀도}}}''' ||<-4>1,017명/km² || ||<#dd0000><-6> '''{{{#ffffff 정치}}}''' || ||<#dd0000><-2> '''{{{#ffffff 시장}}}''' ||<-2>롤프게오르크 쾰러 ||<-2> [include(틀:독일 사회민주당)] || [목차] [clearfix] == 개요 == > '''Die Stadt der Wissenschaft''' > ---- > 학문의 도시[* 괴팅겐의 캐치 프레이즈. 혹은 이를 약간 비틀어서 Die Stadt, die Wissen schafft(지식을 창조하는 도시)라고 쓰기도 한다.] 독일 [[니더작센]]에 위치한 도시. 인구는 13만 가량으로 비교적 소규모의 도시이지만 [[괴팅겐 대학교]]로 대표되는 뛰어난 교육과 연구기관으로 유명하다. == 역사 == 고고학 발굴 결과 서기 7세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또한 이 일대에 10세기 무렵 구팅기(Gutingi)라는 명지명이 기록에 언급되지만, 일반적으로는 [[하인리히 사자공]][* Heinrich der Löwe. [[작센]]과 [[바이에른]]의 공작을 겸했으며, [[동방식민운동]]에도 많은 기여를 한다.]이 12세기 후반에 마을을 세운 것이 오늘날 괴팅겐의 출발점으로 이해된다.[* 사실 하인리히 사자공이 세웠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그 당시 일대에서 그 말고 도시 건설과 같은 정책을 펼칠만한 세력을 갖추고 있던 사람이 없기 때문에 추측되는 것일 뿐.] 명목상 하인리히 사자공의 가문이었던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 훗날 세를 키워 [[하노버 왕국]]의 왕실이 되었으며, 현재 영국 [[윈저 왕조]]의 조상이기도 하다.]이 대대손손 소유하기는 했으나 상당한 자치권을 보유했으며, 독일 남부와 북부를 오가는 교통로의 가운데에 있다는 이점[*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이 무렵 독일의 양대 상업 거점이던 [[뤼벡]]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중간지점이었다.]을 활용하여 [[한자동맹]]에 가입, 직물과 양모 무역을 통하여 중세 말기 경제적 번영을 누린다. 하지만 16세기 초반 칼렌베르크 공작 에리히 1세[* 괴팅겐을 다스리던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의 대가 일시적으로 끊긴 이후 새로 이 지역의 패권을 차지한 인물이다.]의 간섭에 반발하여 그에게 충성 맹세를 거부하였다가 당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막시밀리안 1세(신성 로마 제국)|막시밀리안 1세]]로부터 무법 도시로 명명되는 홍역을 치르면서 그 세가 빠르게 악화됐고,[*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이 홍역을 치른 뒤 칼렌베르크 공작과 괴팅겐 사이의 사이가 막상 꽤나 우호적이었다는 점이다. 칼렌베르크 공이 괴팅겐에게 금전적으로 많이 의존했기 때문(...) ~~역시 [[쇼미더머니]]는 만고불변의 진리~~] 엎친데 덮친 격으로 16세기 후반 급성장한 영국의 모직물 산업에 밀리면서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이후로도 여러차례 주인이 바뀌는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애초에 오늘날 [[니더작센]] 일대가 중세-근대 시기 독일 문화권 내에서도 가장 군소공국이 난립하던 지역이었다. 니더작센이라는 지명이 등장한 것은 빨라야 19세기 후반 [[독일 제국]]의 성립 이후이며, 늦으면 [[1920년대]]까지로 그 시기가 밀린다.] 1692년 [[하노버]] [[선제후]]가 이 곳을 차지한다. 1737년 [[동군연합|하노버 선제후이자 영국의 국왕이었던]] 조지 2세의 명령에 의해 [[괴팅겐 대학교]]가 건립된다.[* 참고로 하노버와 영국의 동국 연합은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면서 끝이 난다. [[살리카 법]]에 따라 독일에서는 여자 군주가 즉위할 수 없었기 때문.]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는 프랑스 군이 이 곳을 점령하면서 일시적으로 베스트팔렌 왕국의 영지에 편입되었다가[* 이 때 나폴레옹이 전투를 수행하던 도중 괴팅겐을 포격하려다가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우스]]가 이 곳에 머무른다(당시 괴팅겐 대학교에 교수로 재직중)는 소식을 듣고는 포격을 포기했다는 [[카더라]]도 있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다시 하노버 왕가의 소유지로 넘어온다. 하지만 하노버 왕국은 [[7주 전쟁]] 당시 줄을 잘못섰다가 공중분해되어버렸고, 하노버 일대가 [[프로이센 왕국]]에게 흡수되면서 괴팅겐 역시 프로이센의 일원으로 편입된다. 이후 [[독일 제국]] 시기에도 괴팅겐 대학교의 학문적 성취에 힘입어 괴팅겐은 독일 내에서도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맡았지만, 1933년 [[나치]]가 집권하면서 암운이 드리운다. 당시 괴팅겐 대학교에는 무수히 많은 유대인 학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대거 쫓겨났던 것. 특히 [[에드워드 텔러]]를 비롯한 유대인 학자들이 많았던 물리학 계열에서 타격이 컸다. 당시 나치는 이른바 아리안 물리학을 내세우면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주창한 [[상대성 이론]] 등을 유대인 물리학이라고 배척했기 때문.[* 여담이지만 순수 독일인이었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도 나치 독일 집권 직후 무심코 상대성 이론을 인용했다가 [[게슈타포]]로부터 [[코렁탕|코시지]]를 먹을 뻔 했다.] ~~그리고 에드워드 텔러는 미국으로 망명해서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는 것으로 복수를 했다.~~ 결국 물리학과를 포함한 대다수의 유대인 교수들이 193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교직에서 쫓겨났고, 괴팅겐과 괴팅겐 대학교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학문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다.[* 이건 단순히 괴팅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독일 학계 전체가 나치로 인하여 겪어야 했던 댓가였다.] 그래도 다행히도 2차 대전 중에는 교육 산업 중심의 소규모 도시라는 점 덕분에 폭격을 피했고[* 이따금 도시를 지나가는 철도에 대한 폭격이 가해지기는 했지만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버린 [[함부르크]]나 [[드레스덴]]과 비교하자면 조족지혈. 야사에 따르면 [[케임브리지]]를 폭격하지 않는 조건으로 딜을 했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종전 이후 새로이 편성된 행정구역인 니더작센에 편입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출신 인물 == *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 [[오토 한]] * [[다비트 힐베르트]] * [[막스 플랑크]] * 크리스티안 뷔트너 ([[TheFatRat]])[* 일렉트로닉 뮤직 DJ.] [[분류:니더작센]][[분류:독일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