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다리(건축물)]][[분류:청계천의 교량]] [include(틀:청계천의 교량)] ||||||||||<tablewidth=100%><bgcolor=#3594d3><:> '''{{{#FFFFFF 청계천의 교량}}}''' || ||<width=30%> 상류 방면 ||<|2> ← ||<width=30%> 이름 ||<|2> → ||<width=30%> 하류 방면 || || [[수표교#s-3]] || '''관수교''' || [[세운교]] || ||<table width=662>[[파일:관수교.jpg|width=100%]]|| || 관수교 || [목차] == 소개 == {{{+1 觀水橋 / Gwansugyo}}} [[청계천]]의 [[다리(건축물)|다리]]이다.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7번째 다리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화문로]]([[장사동(서울)|장사동]])와 [[중구(서울)|중구]] [[충무로]](입정동)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 == 이름과 역사 == 이름은 [[조선시대]] 이 근처에서 [[청계천]] 준설사업을 담당하였던 관청인 준천사(濬川司)가 수위(水)를 관측(觀)하였다는데서 유래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에 처음 세웠다. ||<table width=662>[[파일:관수교 동아일보 1924년.png|width=100%]]|| || 1924년 동아일보에 실린 관수교[[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4071000209203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4-07-10&officeId=00020&pageNo=3&printNo=1412&publishType=00020|#]] || 건립 배경에는 슬픈 역사가 담겨있다. [[일본 제국|일제]]는 현재의 [[남산(서울)|남산]] 예장동 일대를 일본인들의 전용공간으로 만들면서 통감부와 통감관저[*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와 총독관저로 바뀐다.], 일본군 주차군 사령부[* 1908년에 용산으로 이전하고 이 자리에는 조선헌병대가 들어섰다.] 등을 세웠다. 이른바 왜성대이다. 왜성대에서 [[순종(대한제국)|순종황제]]가 머물던 [[창덕궁]]에 가려면 [[종로]]를 거쳐 [[남대문로]]를 통해 빙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일제는 자신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게 왜성대와 창덕궁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길을 뚫었고, [[청계천]]을 통과하는 다리로 놓은 것이 바로 관수교였다. 즉, 관수교는 일제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세운 다리였던 것.[* 실제로 현재 관수교 북쪽 정방향으로 [[창덕궁 돈화문]]이, 남쪽 정방향으로 [[남산골한옥마을|남산골공원]]이 있는데, [[공원]] 자리에는 조선헌병대가 있었다. 창덕궁과 조선헌병대까지 일직선으로 쭉 뚫려있었던 것.]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 당시 사라졌고, [[2000년대]]에 진행된 [[청계천]] [[복원]][[공사]] 때 새로운 다리로 재건되었다. 2005년 9월 30일 [[대림산업]]과 [[삼성건설]]에 의해 준공되었다. == 특징 == * 길이 22.5m, 폭 25.5m 규모이다. 3차선으로 종로방향 일방통행만 가능하다. == 교통 == === 지하철 === * [[서울 지하철 2호선|서울 지하철 2 ·]][[서울 지하철 3호선| 3호선]]: [[을지로3가역]] 5번 출구 (도보 4분) * [[서울 지하철 1호선|서울 지하철 1 ·]][[서울 지하철 3호선|3 ·]][[수도권 전철 5호선|5호선]]: [[종로3가역]] 13번 출구 (도보 7분) === 버스 === * [[서울 버스 173]] * [[서울 버스 100]] * [[서울 버스 105]] * [[서울 버스 152]] * [[서울 버스 202]] * [[서울 버스 261]] * [[서울 버스 N30]] * [[서울 버스 01|서울 버스 01A/B]] == 여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