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1 관미성(關彌城)[*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의 표기로 흔히 잘 알려진 이름이기도 하다.] / 각미성(閣彌城)[* [[광개토대왕릉비]]에서의 표기.]}}} [[백제]]의 옛 성 중 하나. == 역사 == >'''"겨울 10월에 백제 관미성(關彌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그 성은 사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바닷물이 둘러싸고 있어 왕이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20일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6 [[광개토왕]] 1년 겨울 10월 기사.''' >'''"겨울 10월에 고구려가 관미성을 쳐서 함락시켰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3 [[진사왕]] 8년 겨울 10월 기사.''' >'''"영락 6년 병신년에 왕이 몸소 수군을 이끌고 잔국(백제)을 토벌하였다. (우리) 군은 영팔성, 구모로성, 각모로성, 간저리성, □□성, {{{+1 각미성 }}}, 모로성, 미사성, □사조성, [[아차산성|아단성]], 고리성, □리성, 잡진성, 오리성, 구모성, 고모야라성, 혈□□□□성, □이야라성, 전성, 어리성, □□성, 두노성, 비□□리성, [[미추홀|미추성]], 야리성, 태산한성, 소가성, 돈발성, □□□성, 루매성, 산나성, 나단성, 세성, 모루성, 우루성, 소회성, 연루성, 석지리성, 암문□성, 임성, □□□□□□□리성, 취추성, □발성, 고모루성, 윤노성, 관노성, 삼양성, 증□성, □□노성, 구천성 등을 공취(攻取)하고, 그 도성(위례성)에 다다랐다."(이후생략)'''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討伐殘國. 軍□□首攻取 寧八城,臼模盧城,各模盧城,幹氐利城,□□城, {{{+1 閣彌城 }}},牟盧城,彌沙城,□舍蔦城,[[아차산성|阿旦城]],古利城,□利城,雜珍城,奧利城,勾牟城,古模耶羅城,頁□□□□城,□而耶羅城,瑑城,於利城,□□城,豆奴城,沸□□利城,[[미추홀|彌鄒城]],也利城,太山韓城,掃加城,敦拔城,□□□城,婁賣城,散那城,那旦城,細城,牟婁城,于婁城,蘇灰城,燕婁城,析支利城,巖門□城,林城,□□□□□□□利城,就鄒城,□拔城,古牟婁城,閏奴城,貫奴城,彡穰城,曾□城,□□盧城,仇天城,□□□□□其國城''' > >'''[[광개토대왕릉비]] 영락 6년(396년) 기사.''' 원래는 백제의 북방을 지키던 천혜의 요새[* [[삼국사기]] [[백제]]본기 [[진사왕]]조에서는 요해처(要害處)라 표현되어 있다.]로, 사면이 가파른 절벽에다 바다에 둘러싸인 구조로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었다. 하지만 [[고구려]] [[광개토대왕]] 1년(391) 겨울 10월에 [[광개토대왕]]이 직접 백제를 침공하여 수곡성 등 백제 북방의 성들을 함락시켰을 때 관미성 역시 공격하였고, 일곱 방향에서 [[근성|20일 동안 밤낮으로 성을 공략한 끝에 결국에는 관미성을 함락시켰다.]] 관미성이 빼앗긴 것은 백제에게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이는 백제 북방의 주요 방어거점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서해]]로 빠져나가는 해상기지를 잃은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 당연히 백제에서는 이후 [[진사왕]]을 [[쿠데타|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아신왕]]이 393년 8월에 군사 1만과 [[진무(백제)|진무]]를 보내어 관미성을 탈환하게 하였으나 관미성의 압도적인 방어력과 고구려군의 보급로 차단으로 인하여 성을 탈환하는데 실패했고 이후로도 백제는 고구려에 대하여 공격을 시도하나 매번 실패로 돌아간다. 오히려 4년 뒤 396년에 [[광개토대왕]]이 백제의 수도 [[위례성]]을 공략할 때 수군의 전진기지로 관미성을 이용하여 지상군은 [[위례성]] 북쪽의 [[아차산성]], 수군은 [[한강]]을 통하여 위례성을 압박하였고, 결국 [[아신왕]]을 항복시키고 58성 1400촌[* [[아신왕]] 때 밀려난 영토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 지금도 학계에서 논의 중이다. 이는 [[아신왕]] 이후 [[개로왕]], [[동성왕]], [[무령왕]], [[성왕(백제)|성왕]] 대 기록에 잃어버렸을 것으로 생각되는 한강유역에 대한 기사가 버젓이 그것도 빈번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령왕]] 때는 황해도 수곡성을 공격했다는 기사까지 있을 정도이다. 현재 학계에서 개로왕~웅진시기 백제의 영역은 떠오르는 논점 중 하나다.]을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로도 관미성은 고구려의 수군기지로서 고구려가 [[서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고 남방을 압박하게 된다. == 위치 문제 == [[파일:98uK4lr.jpg|width=300]] (관미성 위치와 관련된 지도.[*출처 [[http://blue-paper.tistory.com/m/post/1169]]]) 관미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여전히 논쟁거리이다. 크게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오두산 통일전망대]]에 위치한 오두산성이라는 설([[김정호]], 윤일녕 등)과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도]]의 화개산성이라는 설([[이병도]])이 유력하고, 그 외에 소수학설로 [[개성특급시]] 인근이라는 설, [[강화도]]에 있었다는 학설도 존재한다. 한편, [[환빠]]들은 관미성이 [[대륙설|중국 요서지방에 있었으며]] [[요서경략설#s-3.4.3|환서대백제의 증거]]라 주장하지만 애초에 믿을 게 못된다(...). 한수가 안성천이고 위례성의 위치가 천안직산의 위례산이라는 직산위례성설에 의하면,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에 있는 [[영인산성]][*5 위치와 표현이 영인산성과 일치하며 [[영인산성]]은 성둘레만 1000m에 달하며 [[영인산]]이 있는 아산은 무려 20여개가 넘는 크고작은 산성들이 산재해 있다.특히 [[배방성]]은 개로왕때의 설화가 남아 있다.]이 관미성이 될 수 있다. 다만 직산위례성설은 비주류 학설이기 때문에 오두산성설, 교동도설, 강화도설 등에 비하면 크게 언급되지는 않는다. == 대중 문화에서의 관미성 == [[광개토대왕]] 시기를 그린 대중 매체에서 관미성은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 [[태왕사신기]] === [[파일:mFXXRCM.jpg|width=300]] [[태왕사신기]]에서 나온 관미성. [[환빠]]들의 망상 그대로 중국 요서지방의 서백제에 위치한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애초에 고증도 틀려먹은게, 백제 성이 아닌 무슨 [[둔황|돈황]]의 [[막고굴]] 누각 비스무리한 중국 성 삘이다? 뭐 [[대륙설|요서지방에 서백제가 있었다]]는 ~~[[환빠|정신나간]]~~설정이라 성 모양을 이렇게 만든 것인지는 모르지만, 애초에 깊게 생각하면 [[지는 거다]](...). 설정상 이 곳의 성주로 [[청룡]]의 화신인 처로가 맨 처음 등장한다. === [[광개토태왕(드라마)|광개토태왕]] === [[파일:oSR6k7r.png|width=300]] [[광개토태왕(드라마)|광개토태왕]]에서 나온 관미성. 그나마 위의 정체불명의 성과 달리 정설에 비슷하게 [[강화도]]라 나왔고 좀 더 현실적이다.~~그럼 뭐하나 어차피 둘 다 [[괴작]]인데~~ 여담으로 이에 대해서 [[환빠]]들은 '''대륙에 있던 관미성을 [[한반도]]에 비정하다니 [[태왕사신기]]에 비하여 크게 후퇴했다!'''라고 깠다(...). 사진을 보면 어디서 본듯한 성이다 드라마 징비록에서 나온 평양성이다 === [[천년의 신화]] ===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국산 [[RTS]] [[천년의 신화]]에서도 등장. 고구려 미션 2 스테이지로 나오는데, 초반에 [[사령부]]에 해당하는 회의소가 없고 일꾼이 황소호민 2기밖에 없지만 초반 자원으로 적당히 버티며 기다리다 보면 [[광개토대왕]]이 일꾼과 지원군을 이끌고 나타난다. 초반 미션이다 보니 실제 역사 속의 난공불락의 철옹성과 달리 난이도는 쉽다. === [[바람의 나라(게임)|바람의 나라]] === [[파일:external/down.humoruniv.org/hu_1448794559_8791283435.jpg]] [[MMORPG]] [[바람의 나라(게임)|바람의 나라]]에서도 [[백제(바람의 나라)|백제]] 지역의 일부로 관미성이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관미성(바람의 나라)]] 문서 참조. [각주] [[분류:백제]] [[분류:성채/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