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 광복군/군인]][[분류:대동군 출신 인물]][[분류:1882년 출생]][[분류:1922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 곽치문(郭致文) || || 생몰 || [[1882년]] ~ [[1922년]] || || [[출생지]] || [[평안남도]] [[대동군]] 임원면 청호리 || || 사망지 || 평양형무소 ||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곽치문은 1882년생이며 평안남도 대동군 임원면 청호리 출신이다. 그는 1919년 8월 중순 대한독립광복군 사령관 [[이탁(1889)|이탁]]의 밀명을 받고 광복군 국내 지부를 설치하기 위해 파견된 김봉규(金鳳奎)의 권유를 받고 국민향촌회(國民鄕村會)를 조직하고 의원이 되었다. 또한 광복군교통원(光復軍交通員), 청년단통신원(靑年團通信員)과 동군 제1대원(第一隊員)이 되어 군자금 모집, 격문 배포 등 항일 활동에 주력했다. 이후 권총 등 무기를 구입하여 무장활동을 준비했으나 1921년 5월 임원면 청호리에서 김국홍(金國洪), [[나진강]] 등과 함께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9월 15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던 중 고문의 여독으로 법정에서 졸도해 재판이 잠시 중단되었다. 이후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1922년 4월 6일 기각되어 형이 확정된 뒤 옥고를 치르다 1922년 무렵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곽치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곽치문의 아내 [[박치은]] 역시 남편의 독립운동에 적극 협조했다가 옥고를 치러야 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