郭悳 (? ~ 282?/283?)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 자는 언손(彥孫). [[명원황후]]의 사촌동생. 232년 [[조예#s-1|조예]]가 딸인 [[조숙(삼국지)#s-1|조숙]]이 요절한 일로 인해 종손인 진황과 합장시켰는데, 곽덕을 진황의 후계자로 해서 진(甄)씨 성을 계승하도록 하면서 평원후로 책봉해 조숙의 작위를 계승하게 했다. 역사가인 [[손성#s-2|손성]]은 예법에 부인이 이미 봉작을 받은 일이 없는데, 아이에게 대읍을 봉하는 것이 가능하겠냐고 하면서 이 일에 대해 비판했다. 251년에 [[사마사]]가 집권하자 그의 딸과 결혼했다가 처가 일찍 죽자 [[사마소]]의 딸인 경조장공주와 결혼했는데, 사마사, 사마소는 곽덕과 맺어지고 싶었기에 빈번하게 혼사를 치른 것이다. 곽덕은 재주나 학식은 없었지만 공경스럽고 근면하면서 겸손하고 온화했다. 264년에는 광안현공에 봉해졌다가 서진이 건국되면서 265년에 특진의 자리가 더해졌으며, 종정, 시중 등을 지냈다. 282년에 [[사마유]]가 산동으로 부임하는 와중에 [[왕제#s-2|왕제]]와 함께 산동에 부임하지 않도록 간청해 당시의 사람들은 이를 훌륭하게 여겼으며, [[사마염]]은 곽덕을 훌륭하게 여겨 대홍려에 임명하고 시중, 광록대부를 더했지만 곽덕은 얼마 후에 병으로 사망했다. 그가 죽자 중군대장군으로 추증하고 개부시중은 전과 같이 하면서 시호는 공공(恭公)으로 했으며, 아들인 곽희가 후사를 계승했다. [[분류: 위나라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