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초(춘추전국시대)의 영윤)] '''공자 영제'''(公子嬰齊, ? ~ [[기원전 570년]])는 [[춘추시대]]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의 [[영윤]]이다. 자는 '''자중'''(子重)이다. [[초목왕]]의 아들이자 [[초장왕]]의 동생이다. == 생애 == [[기원전 598년]], 좌윤(左尹)이 되어 [[송(춘추전국시대)|송나라]]를 공격하였다.[* 《春秋左氏傳·宣公十一年》:楚左尹子重侵宋,王待諸郔。 ] [[기원전 597년]], 좌군(左軍)을 거느리고 [[필 전투]]에 참여하여 [[진(춘추오패)|진나라]]를 대패시켰다.[* 《春秋左氏傳·宣公十二年》:子北師次於郔,沈尹將中軍,子重將左,子反將右,將飲馬於河而歸。 ] [[기원전 589년]], [[영윤]]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허나라#s-1|허나라]], [[채나라]]와 함께 [[위(춘추전국시대)|위나라]], [[노나라]]를 공격하여 [[안 전투]]에서 진나라에게 공격을 받던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를 구원하였다. 그해 겨울, [[노성공]]이 영제, [[채경후]], [[허영공]], [[진(통일왕조)|진(秦)나라]]의 우대부(右大夫) 열(說), 송나라의 화원(華元), [[진(춘추전국시대)#s-4|진(陳)나라]]의 공손 녕(公孫寧), 위나라의 [[손량부]], [[정(춘추전국시대)|정나라]]의 [[공자 거질]](公子去疾), 제나라의 대부와 함께 촉(蜀) 땅에서 회맹하였고, [[공형]](公衡)을 초나라에 인질로 보내기로 하였다.[* 《春秋左氏傳·成公二年》:十一月,公及楚公子嬰齊、蔡侯、許男、秦右大夫說、宋華元、陳公孫寧、衛孫良夫、鄭公子去疾及齊國之大夫盟於蜀。 ] 공자 영제는 송나라를 정벌한 뒤 신(申), 여(呂) 땅을 상전(賞田)으로 받고자 하였으나 신공(申公) 무신(巫臣)이 이를 저지하였다. 이후 무신이 진나라로 달아나자 공자 영제는 사마(司馬) [[공자 측]]과 함께 무신의 일족 및 청윤(淸尹) 불기(弗忌), 연윤(連尹) 양로(襄老)의 아들 흑요(黑要)를 죽였다. 공자 영제는 무신의 일족 중 한 사람인 자염(子閻)의 가산을 얻었다.[* 《春秋左氏傳·成公七年》:子反欲取夏姬,巫臣止之,遂取以行,子反亦怨之。及共王即位,子重、子反殺巫臣之族子閻、子盪及清尹弗忌及襄老之子黑要,而分其室。子重取子閻之室,使沈尹與王子罷分子蕩之室,子反取黑要與清尹之室。 ] [[기원전 585년]]과 [[기원전 584년]], 공자 영제는 진나라에 의존하고 있던 정나라를 공격하였다. [[기원전 584년]], 무신이 공자 영제로 인해 멸족당한 원수를 갚기 위해 진나라에게 [[오(춘추시대)|오나라]]와 연합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로 인해 공자 측과 공자 영제는 1년 동안 7번이나 분명(奔命)하느라 피로해졌다.[* 《春秋左氏傳·成公七年》:巫臣請使於吳,晉侯許之。吳子壽夢說之。乃通吳於晉。以兩之一卒適吳,舍偏兩之一焉。與其射禦,教吳乘車,教之戰陳,教之叛楚。置其子狐庸焉,使為行人於吳。吳始伐楚,伐巢、伐徐。子重奔命。馬陵之會,吳入州來。子重自鄭奔命。子重、子反於是乎一歲七奔命。 ] [[기원전 582년]], 진(陳)나라와 [[거나라]]를 공격하였다.[* 《春秋左氏傳·成公九年》:楚子重侵陳以救鄭。冬十一月,楚子重自陳伐莒,圍渠丘。 ] [[기원전 580년]], 송나라의 화원(華元), 공자 영제, 진나라의 [[난서]]가 사적으로 우호를 맺고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의 첫 번째 정전 회의를 달성하였다.[* 《春秋左氏傳·成公十一年》:宋華元善於令尹子重,又善於欒武子。聞楚人既許晉糴伐成,而使歸復命矣。冬,華元如楚,遂如晉,合晉、楚之成。 ] [[기원전 575년]],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언릉 전투]]가 일어났다. [[초공왕]]이 소차(巢車)에 오르자 영제는 [[백주리]]로 하여금 공왕의 뒤에 서게 하였다. 전투 중에 진나라의 [[난침]]이 영제를 보고 이전에 그가 진나라 군대를 '정돈과 쉬기를 잘한다'고 평가한 것을 떠올려 [[진여공]]에게 영제에게 술을 선물해 호의를 보이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초나라가 전투에서 패하자 영제는 공자 측에게 자살하여 사죄하라고 암시를 보냈고, 공자 측은 자살하였다. 공왕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막게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春秋左氏傳·成公十六年》:子重複謂子反曰:“初隕師徒者,而亦聞之矣!盍圖之?”對曰:“雖微先大夫有之,大夫命側,側敢不義?側亡君師,敢忘其死。”王使止之,弗及而卒。 ] [[기원전 574년]], 정나라를 구원하였다. [[기원전 573년]], 팽성(彭城)의 어석(魚石)을 구원한 뒤 송나라를 공격하였다. [[기원전 571년]], 영제와 [[공자 임부]]가 소국의 재물을 받고 자신들을 핍박한 우사마(右司馬) [[공자 신]]을 죽였다.[* 《春秋左氏傳·襄公二年》:楚公子申為右司馬,多受小國之賂,以逼子重、子辛,楚人殺之。故書曰:“楚殺其大夫公子申。”] [[기원전 570년]], 오나라를 공격하여 구자(鳩兹)에서 이기고 형산(衡山)에 이르렀다. 자신은 먼저 개선하여 크게 연회를 벌였는데, 부하인 등료(鄧廖)가 이끄는 조갑차병(組甲車兵) 3백 명과 정예 보병 3천 명이 오나라의 기습을 받아 조갑 80명과 보병 300명 만 남게 되었다. 영제는 소식을 듣고 심병(心病)을 얻었다가 사망하였다.[* 《春秋左氏傳·襄公三年》:三年春,楚子重伐吳,為簡之師,克鳩茲,至於衡山。使鄧廖帥組甲三百、被練三千以侵吳。吳人要而擊之,獲鄧廖。其能免者,組甲八十、被練三百而已。子重歸,既飲至,三日,吳人伐楚,取駕。駕,良邑也。鄧廖,亦楚之良也。君子謂:“子重於是役也,所獲不如所亡。”楚人以是咎子重。子重病之,遂遇心病而卒。 ] [각주] [[분류:생년 미상]][[분류:기원전 570년 사망]][[분류:춘추시대의 공자]][[분류:초나라의 영윤]]